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옹 Sep 03. 2018

여행수필 31 - 필리핀 팔라완,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

행복은 너무 가까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보지 못한다.

심옹의 여행수필 31편


한국에 제주도, 일본에 오키나와, 미국에 하와이가 있다면, 필리핀에는 팔라완이 있다. 마치 한국사람들이 휴양지로 제주도를 우선 순위에 놓듯이 필리핀 내국인들도 늘 꿈에 그리는 섬, 바로 팔라완이다.  


다른 필리핀의 휴양지와는 달리 외국의 상업자본들과 정형화된 관광산업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지 않아 아직은 팔라완만이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엘니도, 코론 등)을 잘 지켜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인천과 부산에서 직항노선이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제서야 본격적인 여행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내 인생에 있어서 꼭 일어나야했던 일인지는 몰라도, 필리핀 팔라완의 주도시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1년 반 남짓 일을 한 적이 있다. 관리를 맡고 있었던 학원이 시내와 대중교통으로 1시간거리. 왕복 2차선의 도로를 따라 시내로 혹은 학원으로 오다보면, 1년 내내 덥고 습한 필리핀의 기후와 늘 전쟁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은 에어컨이 있는 버스가 들어왔지만 처음에 내가 도착했을 때는 에어컨 버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는 것도 아니어서, 재수 없으면 버스에 앉은 채로 뜨거운 태양볕 아래서 1시간도 넘게 기다렸다가 출발한 적도 많다. 그나마 그래도 앉아갈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너무 더워서 창문을 닫고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놓고 가면 머리가 산발한 것처럼 흐트러지는 것은 기본, 바람을 오래 쐬면 가끔씩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도 있다. 그래서 늘 시내로 나오거나 학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이 날도 시내에서 볼 일을 다 보고 여느 때처럼 버스 창문을 열어놓고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앞쪽으로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진다. 멀리서 내 눈을 의심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보이는 것은 지프니 차량을 가득 채운 것이 짐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팔라완에는 마닐라처럼 지프니가 많지 않다. 멀티캡이라고 해서 소형밴의 뒷좌석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인데, 지프니는 팔라완에서 대게 장거리 이동이나 짐을 싣는 용도로 이용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당연히 시설도 낙후되고 소음도 많다. 


아마도 하교길이었나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속 50~60km이상은 되어보이는 속도에 어린 학생들이 위태하게 지프니차량 가장 자리에 저마다 두 발을 올려놓고 때로는 친구에 의지해서, 때로는 차량의 여러 곳을 꼭 붙잡고 가고 있었다. 그나마 지붕에 탄 학생들은 편해보였다. 


최초 이 장면을 본 순간, 안전불감증을 논하기 이전에 어쩌면 내게는 일종의 문화충격으로까지 다가왔다. 이후에도 이런 광경을 몇번이나 보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래왔었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그들만의 대처방법인 것 같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 상황 속에 들어가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법을 어릴 적 부터 터득해가는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들 중의 하나, 낯선 이방인의 눈에는 그들만의 잣대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일상의 모습,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무더운 기후,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질 법한 만원의 버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퍼진다. 자연스럽게 상황에 적응해가는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보면서.


심옹의 여행수필 32편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수필 30 - 졸음운전보다 더 조심할 것, 수면운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