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의 연구.
거리에 슬슬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여름의 끝무렵에 작가 C의 전시회가 열렸다. 꽤나 명성이 높았던 사람이었는지, 몇 달 전부터 곳곳에 광고가 보였다. 작가가 특별히 전시회 첫 주말에 한하여 직접 도슨트를 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날 한적한 전시 공간 중앙에서 작가가 사람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던 그는, 꽤나 수척한 모습에 지저분한 머리카락, 그리고 구부정한 등을 짊어지고 있었으며 마치 전시 작품 중 하나인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인내심이 다해 가는지 제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도 있었다. 갤러리가 한 반쯤 채워졌을 때였을까, 작가가 입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그의 생김새를 닮은 듯한 얇은 미성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답변은 없었다. 모두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이번 전시회를 제가 하루만 설명을 해 드리기로 했네요. 만드는 것만큼 말이 온전히 나올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아닌 경우가 많기에 혹시 말을 잘못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는 말인지 공기인지 무언가를 한번 삼켰다.
"...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그는 입구 쪽에서부터 작품들을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일정했다. 그는 이게 본인이랑은 무관하다는 듯이 책을 읽듯이그저 단어들을 나열하는 듯 했다 전시 작품 중 절반, 아니 절반을 덜 본 시점에서 마침내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않나요?"
작가는 발걸음을 멈추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질문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평온하던 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오르는 듯했지만, 이내 사라지고 다시 공허함만이 남았다.
"... 그럴 수 있겠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작가의 칭찬을 받은 질문자는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둘을 쿡쿡 찌르며 우쭐거렸다. 둘은 호응을 해주며 질문자를 치켜세웠다. 그 사이에 작가는 다음 작품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러다 그는 이내 멈췄다. 하지만 이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작품을 향하지 않았고, 전시회 홀 중앙으로 향했고 그의 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속도로 걷기, 아니 달렸다. 작가의 돌발 행동에 모두들 놀랍다는 표정을 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홀의 중앙에 도달한 그는 이전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번뜩이는 눈빛을 하고 주변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리곤 소리 질렀다. 외마디 비명과 절규 그 어느 중간 즈음에 위치하는 무언가를 그는 몇 번이나 토해냈다. 처음에는 불안하다는 듯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관객들은, 이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다.
작가는 이내 지쳤는지 기도를 통해 쇳소리만 내뿜고 있었다. 파르르 떨면서 말이다. 그러던 그의 눈에 본인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작품이 들어왔다. 큰 캔버스를 여러 빛깔의 껌댕으로 덧칠한 작품이었다. 한동안 그것을 응시하던 그는 일어나 작품을 향해 움직였다. 사람들의 무리 또한 그를 따라 재배치됐다. 작품 앞에 도달한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벽에서 들어냈다.
그의 신장의 3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그림을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캔버스를 지지하던 나무 프레임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이 뒤틀렸다.
작가가 캔버스 위로 올라섰다.
캔버스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이 갈라졌다.
그가 그림을 향해 발길질과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둔탁한 파열음의 사이사이에 작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무 파편이 그의 주먹과, 얇은 양복바지를 뚫고 다리에 박혔다. 검은색이 뒤틀리고, 갈라지고, 짙은 선홍빛이 섞여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작품을 본래 형채를 알아볼 수 없었고, 작가 또한 본래 형채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처음과는 달리 생기가 넘쳤고, 눈빛은 희번덕 거렸으며, 온몸 곳곳에 찢어진 캔버스 조각과 나무 프레임들이 장식들처럼 달려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모두가 숨을 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두를 향해 작가가 허리를 펴 일어났다. 허리를 꼿꼿이 핀 그는 적어도 185는 돼 보였다. 그 장신 위에 달린 두 눈이 모두를 바라봤다. 그러곤 C는 작품을 향해 무너졌다.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는 그저 쓰러졌다. 멀리서 보았으면 그 누구도 그게 사람이라고 의심도 못했을 것을 관객들은 확신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들만 저 형채를 알 수 없이 꿈틀거리는 물체가 사람이라고 알았으며, 이 순간의 목격자인 본인들의 행운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던 도중,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다른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전염병처럼 돌고 돌아 모두가 사람의 형채를 향해 박수갈채를 선사했다. 그 중앙에서 작가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관경을 두고 관객들이 걸어 나갔다. 나가면서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의 작가의 고귀한 예술혼이라고 말하며 치켜세웠다. 몇몇 기자로 보이는 인원들이 사진을 찍어갔다. 관람 시간이 끝나고 관객들이 사라졌을 때에도 작가는 여전히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더 이상 사람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하나의 덩어리가 검은색 오물 덩어리에 묻힌 형상을 지닌 채, 작가는 정지했다.
사흘 뒤에 대중매체는 작가의 죽음을 위대한 예술 작품의 완성이라 칭하며 실었다. 덩어리는 치워져 밀랍 인형으로 대체됐지만, 찢어진 검은빛 캔버스와, 나무 조각들과, 그 위의 선홍빛 기록들은 그대로 전시회 홀의 중앙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