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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Jan 07. 2018

01. W의 이야기.

    “신청자, 선택 사항에 대해서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신청자 A는 상대 B와 공감 연결을 해지함을 자의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에 동의합니다.”

    땅. 땅. 땅.

    나는 망치를 3번 내리쳤다. 책상 위 카운터를 보니 그가 20번째 신청자였다. 나는 시간에 맞춰서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계자 분들은 신청자를 시술실로 이동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재판은 이걸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일과는 끝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잠시 동안 법정 내의 풍경을 바라봤다. 참관인이라 해 봤자 A의 가족 – 아마 부모님이라 생각했다 – 둘 뿐이었다. 그들은 A가 관계자들과 함께 시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느릿느릿 문으로 걸어 나갔다. 법정 안이 온전히 조용해졌을 때, 나는 뒤쪽 문을 통해 대기실로 돌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대까지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시계를 보니 이미 8시였다.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약속에 늦겠군.”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밖을 향했을 때에는 이미 8시 7분이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법원 밖 벤치에서 C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는 와 있는 친구였지만, 늦은 것은 조금 미안했기에 살짝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 다가가기도 전에 그는 발소리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판사를 직책을 가졌으면 그런 죄책감 가득한 표정은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규율이 사라진 것이 언젠데 그런 소리를 하나.” 나는 답했다. 공기가 살짝 서늘했다.

    “담배 한대 할래?”

    C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필 기분이 아닌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팔에 꼽았다. 가스가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담배 안에 있던 액체가 혈관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살짝 몸을 뒤로 젖혔다. 좀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넌 용케 그렇게 피네. 난 태워 피는 게 사라지고 나서는 위화감이 심해서 잘 못하겠던데.”

    C가 지적하자 나는 피식 웃었다. C는 이런 놈이었다. 머리는 앞서 나가더라도 몸은 살짝 뒤쪽 시간에서 사는. 

    “네가 이상한 거야. 담배는 필요해서 피는 거지,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피는 게 아니라고. 이거까지 없어져 봐라, 내가 판사 그만둔다.”

    나는 답하고 나서는 한 대를 더 주입했다.

    “정말로?”

    C는 물었다, 살짝 스쳐 지나가는 듯이.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어느 부분에 대한 내 발언의 당위성을 의심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아니? 설마 그러겠냐. 그냥 하는 말이지.”

    “흠. 그렇구나.”

    C의 눈길이 잠시 다른 곳을 향했다. 두 문장의 사이에 어색한 여백이 있었다.

    “오늘 재판들은 어땠어. 뭐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

    그래도 이번 질문은 C가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느껴지는 말투였기에 나는 안도했다.

    “뭐, 항상 비슷하지. 내 부문이 뭐 다른 사건들이 생길 일은 없지 않나? 사람들이 들어와서 앉고, 케이스를 읽고, 판결을 내리고. 판결 번복하는 일도 없잖아 요즘은.”

    “그래도, 가끔 그 케이스들이 재미있을 때가…”

    그 순간 법정 문이 열리고 나선 한 사람이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나갔다. 강제로 연행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이는 순순히 제 발로 걷고 있었으니. 다시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가 제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잠시 C와 함께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동시에 시선을 떼고는 다시 대화했다. 

    “무슨 일일까?”

    C가 물었다.

    “뭐, 법정 안에서 살짝 다툼이 있었나 보지. 가끔 있긴 해. 우리는 신청자가 인정해도 상대가 인정 못할 경우에 저럴 때가 있어.”

    “그럴 수도 있나?”

    C가 물었다. 

    “응, 뭐 보통 공감 연결을 맺을 때 쌍방으로 맺는데, 간혹 한쪽만 파하고 다른 한쪽은 파하는 것을 거부하는 거지. 쓸데없는 짓이야.”

    난 단언했다.

    C는 대답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법정 앞에서의 어색한 침묵이 싫었던 나는 이내 제안했다.

    “내가 늦게 왔으니 밥은 살게. 뭐, 항상 먹던 곳으로 갈까?”

    C가 답했다.

    “좋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C는 식당에 가는 길에도 별 말이 없었다. 이러한 침묵이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하는 생각이 궁금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뭔가 말을 하기를 바라는 눈빛을 여러 번 C를 향해 던졌지만 C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그는 조용히 식당을 향해 걸었다.

    가게에 들어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자살했어.”

    툭 하고 던져진 그 말은 주어가 무엇인지 파악할 여부없이 상당하 무겁게 식탁 위로 떨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이 살짝 식을 때까지 나와 C는 침묵을 지켰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로 다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물었다.

    “누가?”

    “직장 동료가. 나도 오늘 알았어.”

    C의 말은 가벼웠다. 무념의 가벼움이었다. 나는 그가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거, 엄청 드물지 않나. 뭐, 이유는 있었겠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그의 앞에 술잔을 놓고 술을 따랐다. C는 술잔을 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가만히 술을 따라 혼자 들이켰다. 술맛이 좋았다.

    “그렇지. 2년 만이야.”

    C도 술잔을 들이켰다. 그의 표정이 알듯 모를 듯 희미했다.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뭐, 저녁 이걸로 되겠어?”

    C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웃었다.

    “아 뭐 다른 것도 시키자. 고기 어때?”

    나는 C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답했다. 나는 여러 가지 물었다. 근 2주 만에 만났지만, 외근을 자주 다니는 C의 인생은 새로운 일들이 항상 많았다. 그는 한동안 술안주로 적격인 외지의 판타지들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몇 병은 마셨을까 시간이 흘렀을 무렵, 우린 둘 다 거하게 취했다. 잠시 힘들어서 고개를 떨구고 조는 C를 두고 나는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늦어서 그런지 가게 화장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적었고, 나는 이내 화장실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울을 보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우스꽝스러웠다. 내일 출근을 걱정하며 나온 나를 C는 용케 웃으며 반겼다. 살짝 구겨지듯이 따뜻해지는 얼굴에 나는 살짝 미소를 보이고 다시 건너편에 앉았다. C는 입을 다시 열었다.

    “그 공감 연결이라는 거, 시작한 지 얼마쯤 됐지?”

    “뭐, 한 10년쯤 됐나. 왜?”

    나는 답했다.

    “벌써 그리 됐나. 공감 해?”

    C는 되물었다.

    나는 한순간 굳었다.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공감 이라니, 제도에 어떻게 공감한다는 뜻인가.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온전히 마음으로 이해 해?”

    “응. 그 이후로 얼마나 세상이 편해졌는데. 우리가 가질 마지막 인간성일지도 모른다고 그랬잖아 그 공감이라는 게.”

    C는 답답한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넌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그건 머리로만 이해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C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술을 따르며 다시 물었다.

    “마음으로 이해 해?”

    “응”

    나는 말했다. 이 친구가 많이 취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적당히 맞는 말을 해 주고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거짓말.”

    C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러곤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를 꺼냈다. 아니, 구 담배를 꺼냈다. 말아서 피우는 류의 담배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했다. 경악했다. 이렇게까지 무모한 놈이었는지, 헷갈렸다.

    “넌 끝까지 이해하는 척이네. 20년 전 즈음의 너를 기억해 보라고. 그 머리로 기억 못 한다고 거짓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식탁 밑에 핸드폰으로 대원들을 호출하며 나는 답했다.

    “뭐, 기억해.”

    “그 당시의 너를 생각해 봐도 이해한다고?”,

    그들이 곧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C는 계속 소리쳤다. 그의 숨에 섞여 나오는 담배 냄새가 역겨웠다.

    “마지막 인간성은 개뿔, 그런 제도 하나 없어도 잘 살았던 시절들이 있었잖아. 그런데 이 제도로 뭐?”

    C가 일어서며 잠시 휘청거렸다.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어떤 생각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경악이 장악한 표정으로 그는 나를 바라봤다.

    “제도가 인간성의 척도를 정하다니. 너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대원들이 뛰쳐나와 C를 끌고 나갔다. 놀람으로 가득 찬 C의 동공은 차차 실망과 슬픔으로 바뀌어 갔다. 가게 문 밖으로 이끌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나에게 그는 가느다랗게 외쳤다.

    “공감 같은 건 우리 힘으로도 할 수 있었잖아 친구.”

    그런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 나에게 남았던 것은 온전한 편안함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남았던 안주를 먹으며 천천히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요청했다.

    “여기 환풍기 좀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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