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도시에서의 춤>, 1883
"그는 간결한 표현과 완서법(litote)이 특징인 인간입니다."
카뮈의 소설을 뒤에 실린 해설을 읽다 '완서법'이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이방인>을 해설한 비평가 로제 키요는 그의 논문에서 주인공 '뫼르소'를 완서법이 특징인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더군요. 완서법이 특징인 인간이라니... 도대체 무슨 인간이길래?
퍼플렉시티에 완서법이 뭐냐 물어봤습니다. 완서법(緩敍法)은 어떤 내용을 직접적으로 긍정하지 않고, 그 반대 의미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하는 수사법이라고 하는군요. 예를 들면 '좋다'를 '싫지 않다'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한자풀이로는 느릴 완에 펼칠 서, 즉 직설적이지 않고 느긋하게 돌려서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완서법이 겉으로는 절제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미를 강조하거나 아이러니한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된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는 지적이다'를 '그는 무지하지 않다'라는 표현으로 바꿔 볼까요. 문맥에 따라 감정을 절제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오히려 의미가 강조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 묘한 기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득 미술 작품 중에서도 완서법 같은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 작품은 바로 르누아르의 <도시에서의 춤>입니다. 아주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가 격식 있게 춤을 추고 있는 그림 말이죠. 남자의 짙은 블랙 턱시도와, 여성의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과 실크 드레스가 말 그대로 차도남, 차도녀를 연상시키는 작품입니다.
두 주인공은 우아하게 무도회를 즐기고 있지만 표정을 자세히 보면 둘의 감정에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 아리따운 여인이 춤 실력도 수준급이군. 하지만 무도회의 황태자인 나, 이 기분을 함부로 내비칠 수는 없지." 여성은 어떨까요. "평소 흠모하던 분과 춤을 추다니. 너무 좋지만... 지금은 도도하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거야. 제발 내 작전이 통하길!"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당신이 좋아요' 대신 '당신이 싫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절제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셨나요? 하지만 그 사이에는 묘한 사랑의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죠. 정말 완서법 같은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 제가 너무 제 마음대로 해석한 것 같다고요? 그럼 같은 시리즈의 다른 작품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군요. 오르세 미술관에는 방금 언급한 <도시에서의 춤>과 짝을 이루는 <시골에서의 춤>이 나란히 전시돼 있습니다. 이 작품은 도시의 그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성은 남성의 리드에 몸을 맡기며,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네이비 수트를 입은 남성은 여성의 귀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이야기를 건넵니다. 사랑이 막 피어오르는 듯한 친밀함이 느껴지죠.
<도시에서의 춤>이 완서법이라면 <시골에서의 춤>은 과장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작품은 냉정과 열정, 이성과 감성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작품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나란히 전시돼 있는 두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는데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밸런스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올 정도로 두 작품은 서로 멋진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말 감성이 더욱 짙어지는 요즘이죠. 오늘은 로맨틱한 음악을 틀어 놓고 소중한 사람과 사랑의 무도 한 곡 춰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때론 완서법으로, 때론 과장법으로 상대방을 리드해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