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와 취미생활 하시나요?

월간에시이 12월 호 기고문

by 아보퓨레

어느덧 연말이네요. 짤막한 에시이 기고 요청이 있어 적어내린 글이 실렸습니다.

함께 나눠볼게요. 다른 글들도 읽어보니 좋은 글이 많네요. 월간 에세이 12월호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 아보퓨레


오래된 친구와 취미생활 하시나요?


얼마 전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유튜브에서 오래된 친구 관계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봤다. 그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관리법, 식단 등을 공부하는 노력을 아까지 않으면서도, 오래된 관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건강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대한 자세를 비교하다니. 래퍼의 참신한 표현에 감탄하면서도 그 핵심은 우리의 오랜 고민을 조명하고 있음에 잠시 내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에게도 오랜 친구들이 몇 그룹이 있다. 대부분 학교에서 맺어진 사이다. 그들은 모두 과거를 추억하며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차이로 인해 몇몇은 겨우겨우 연락해야 보는 사이가 되었고, 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 차이는 바로 취미생활의 유무였다. 사회에 나온 이후 취미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는지의 유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실 나는 소위 말해 ‘취미 부자’로, 리테일 바이어 생활을 하며 접한 여러 활동이 내 오랜 취미로 남은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꾸준히 해온 달리기, 미술 전시, 백패킹, 시계 등 다양한 취미 덕분인지 친구들로부터 취미 추천을 자주 부탁받는다. 나는 언제나 기꺼이 내 경험과 정보를 나눴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경우 시작은 미술전시였다. 바쁜 삶 속에서 그림 보는 것으로 힐링을 할 수 있다는 내 꼬임에 넘어간 친구들은 함께 전시를 보기로 했고, 나는 초심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전시를 엄선해 그들을 초대했다.(장 줄리앙의 전시를 선택했다.) 이후 우리의 모임의 양상은 다소 달라졌다. 만나자마자 닭볶음탕에 소주 한잔 기울이던 우리는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만나 미술 전시를 보고 술자리로 이동하는 것으로 약간의 변형을 시도했다. 매번 친구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전시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전시를 함께 본 경험은 훌륭한 안주가 되어 그날 본 작품이 내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칠 때면 굉장한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그들과의 취미 생활은 더욱 확대됐다. 이번엔 달리기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달리기가 궁금하다고 연락을 해왔고, 마침 애용하던 브랜드의 할인 행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쿠션화 한 켤레를 구매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덕분에 좋은 성능의 러닝화를 구매했고, 밖에 나가 뛰어 본 순간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후 친구는 10km 레이스를 나갈 정도로 성장했다. 대회 전 주에는 함께 한강을 달리며 최종 훈련을 했고, 친구는 1시간 내에 레이스를 완주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 마저도 왜 둘만 달리기를 하냐며 질투하기 시작해 조만간 더 많은 인원이 함께 달리기를 해보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렇게 만나서 어떤 활동을 함께하는 취미는 어려움이 따른다. 시공간의 제약이 가장 크다. 어릴 적 친구들은 고향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과 자주 대면하여 활동을 하기는 쉬운 것이 아님을 안다. 함께 서울에 있어도 결혼, 육아 등으로 인해 자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친구와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기만 한다면 끊임없는 교류는 어렵지 않다. 나는 단체 카톡방을 활용해 몇몇 친구와는 고전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다른 친구들과는 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내가 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다행히도 달에 두 권 정도는 읽는 독서량으로 그들과 함께 좋은 책을 서로 추천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었다. 일례로 정말 많은 친구들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어떤 작품이냐고 물어온다. 영문학을 전공한 내가 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레바퀴 아래서>, <싯타르타> 등 헤세의 책을 네다섯 권 읽은 사람으로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기도 한다.


시계의 경우도 흥미롭다. 남자들은 결혼하면서 예물로 시계를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전까지는 관심조차 없던 아날로그 시계가 그들의 최애 관심사로 떠오르며 오랜 기간 시계 바이어를 했던 나를 찾는다. 예물 이후에도 시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친구들이 있는데 어떤 친구들은 출근길에 시계 착용샷을 공유하거나, 새로 사려는 시계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처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취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물론 취미로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는 골프 외길을 걷는 친구였는데,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것, 그리고 내가 골프는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서로 취미 교집합을 찾지는 못했다. 그 역시 내 취미 추천을 모두 정중히 사양했다. 우리는 가끔 전화를 하고 서로 안부를 묻지만, 이제는 옛날 얘기를 하는 것도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많으니 함께 좋아하는 것을 찾을 시간은 아직 넉넉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이쯤 되니, 친구들과 함께하는 취미가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관계의 중요한 연결고리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취미를 함께한다’는 의미의 깊이를 미처 몰랐던 것 아닐까. 같은 취미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를 생각하고 신경 쓰는 과정이었고, 내 취미를 따라준 친구들은 그만큼 나를 위해 주고, 아껴준 것이었음을.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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