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강아지 선크림도?

배윤환, 딥다이버(Deep Diver) 展

by 아보퓨레

오늘 아침, 모처럼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운동복을 챙겨 입고 모자를 푹 눌러썼죠.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크림 바르고 가."


가을이니까, 하고 방심했던 제 사고 회로를 어찌 알았는지. 잠꼬대처럼 던진 아내의 한마디에 스프레이형 선크림을 여기저기 뿌린 후 집을 나섰습니다.


비가 잔뜩 내린 후 시원하게 갠 한강변을 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인에게 이제 선크림은 필수재구나.


기후변화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세계적으로 이를 막기 위한 합의는 미국의 주도하에 무너지는 중입니다. 아마 우리는 갈수록 더 강한 지수의 선크림을 바르게 되겠지요.


이거 그럼 강아지 선크림도 생기는 거 아니야? 마치 사업의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창조해 낸 양 제품 구상을 해봤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검색해 보니 이미(어째서?) 강아지용 선크림이 있더군요.


강아지도 배는 털이 없어서 선크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배뿐만 아니라 털에도 도포할 수 있는 스프레이형 제품이었습니다. 누군가 저보다 한 발 빨랐군요. 아쉽습니다.


배윤환, <선크림, 사이렌 연작>, 2025 ⓒ 아보퓨레


배윤환 작가의 선크림, 사이렌 연작이 생각났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을 얼굴에 새까만 무언가를 바르고 있는 모습인데요. 숯검댕이 같은 물질을 왜 바르고 있는 걸까요?


사실 작가는 한 선크림 광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해당 광고는 자외선 카메라로 선크림을 도포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자외선 차단제의 중요성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데요. 작가는 이 광고가 인간의 자기기만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하얗거나 투명한 색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다양한 종류의 선크림들. 우리는 스스로 파괴한 환경이 벌하는 강한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크림을 더욱 두텁게 바르고 있죠.


배윤환 작가는 의도적으로 광고를 차용하여 우리가 나만을 생각하며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스스로에게 검댕이를 묻히고 있는 행위로 표현합니다.


제가 강아지를 걱정했듯이 작가도 북극곰도 선크림을 발라야 할 날이 오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나봅니다. 연작의 끝자락에는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북극곰 도상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죠. 이런 날이 오지 않게 앞으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이미 늦었지만, 강아지와 북극곰은 선크림으로부터 지켜내야 할테니까요.


배윤환, <선크림, 사이렌 연작>, 2025 ⓒ 아보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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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딥다이버(Deep Diver)

8.14~11.9

스페이스K(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10시~18시(월요일 휴관)

유료전시(성인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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