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두 번을 내려쳐주게

배윤환, 딥다이버(Deep Diver) 展

by 아보퓨레

'악!'


한 남자의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곡괭이질 하다 힘이 빠지는 바람에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거친 나무 손잡이는 그대로 그의 손가락에 생채기를 냈다. 피를 봐서 그런가 머리가 뻐근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이름은 한스. 생계를 위해 금광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이봐, 거 손 조심하라고. 금맥을 찾고 돈을 왕창 벌면 다시 피아노를 쳐야 하는 손이잖아." 동료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렇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다.


예술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화려한 귀국 공연을 열었었다. 딱 거기까지. 스포트라이트는 또 다른 루키를 찾아 빛의 방향을 틀었고, 그의 손가락은 빛을 잃어갔다.


할 줄 아는 게 피아노밖에 없는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알량한 자존심이 진짜 문제였다. 어여쁜 아내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애틋한 딸을 두고도 그는 망설였다. "내가 한때는... 리사이틀을 하던 사람이라고!"


그의 자존심은 그를 갉아먹다 못해 염증을 일으키고 스스로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지인의 식당 일을 거들며 그의 재기를, 아니 뭐라도 좋으니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해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아내는 시들어갔다. 아내가 시드니 딸아이도 어느새 웃음을 잃었다.


세상 억울한 이야기는 그를 소재로 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 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의 병원비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허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 들어 자꾸 왜 이러지?" 빨리 금맥을 찾아야 하는데 컨디션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이봐, 나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 머리가 너무 아프군."


"그러도록 하게. 자네 여기 온 후 반년 동안 쉬질 않았지 않나." 동료는 걱정스레 한스를 쳐다봤다. 그리곤 잠시 후, 한스는 동료의 시선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한스 자네, 자네 이마에...금이 박혀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배윤환, <두 번 내려쳐>, 2025 ⓒ 아보퓨레


믿을 수 없었다. 의사는 이마에서 금이 자라고 있다고 진단했다. 파편이 튀어서 이마에 박힌 것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었을 터인데, 세상에 금이 이마에서 자라고 있다고? 일단은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몇 가지 검사를 더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그의 이마에 자리 잡은 금덩이는 무서운 속도로 커져나갔다. 한스는 목을 가누기가 점차 힘겨워졌다. 금덩이의 무게가 족히 1킬로그램은 나가는 듯 느껴졌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걸 잘 도려낼 수는 없을까.' 작은 송곳을 가지고 혼자서 이리저리 고민해 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며칠 더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햇살에 눈을 뜬 한스는 어느덧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결단의 순간이 그에게 왔음을. 그날이 오늘임을. 잠시 지난 날을 회상했다. 자신이 피아노를 더 절실하게 원했었는지, 금덩이를 더 원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피아노를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래도 지금 그의 머리는 금에 대한 생각으로, 그리고 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가장 친한 동료를 불렀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이마와 머리 전체를 뒤덮은 금을 보여줬다. 한스는 자신을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 이 깊고 깊은 산골에는 사람이 실종돼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딸아이가 아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로서의 도리를 하고 싶다는 사실도.


"총 두 번을 내려쳐주게. 한번은 금을 잘 도려낼 수 있게... 내 생각으로 족히 3킬로는 될 거 같군. 1킬로는 자네가 갖도록 하게. 2킬로는 우리 딸아이에게 보내주게. 잘 해주리라 믿네. 아마 내가 숨이 붙어있을 것이니 남은 한 번은 내가 편히 갈 수 있게 내려쳐주게. 이것이 내가 간절히 부탁하는 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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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딥다이버(Deep Diver)

8.14~11.9

스페이스K(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10시~18시(월요일 휴관)

유료전시(성인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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