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소멸하겠습니다

니키리, <Scenes>, 2013

by 아보퓨레
니키리, <Scenes>, 2013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무시하려고 해도, 숫자는 한 발 한 발 후퇴하고 있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작가이자 러너인 하루키는 쇠퇴에 관해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러너로서 하루키는 꽤나 진지한 축에 속하는 편입니다. 매년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루틴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위해 한 달에 260km 이상을 달린다고 하죠.

그는 한 대회에서 후퇴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충분한 훈련과 준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기록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새록 떠올랐습니다. 러닝기어샵 '플릿러너'를 운영하는 63년생 신승백 사장님은 자신의 하프 마라톤 기록을 보고 실망했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기록을 본 순간 실망스럽고 씁쓸했습니다...(중략) 나이가 든 자에게 마라톤 기록은 단순한 빠르고 느림이 아니라 젊음의 증명이자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찬란한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갑니다. 자고 일어나면 나도 모르는 새 키가 1cm 커 있고, 서른 즈음에는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자신을 보며 사회인으로서 제법 일 인분을 해내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30년, 혹은 40년 간 생명력 넘치게 살아온 우리는 이후 익숙지 않은 과정을 맞이합니다. 변곡을 마주하고 쇠퇴로 접어드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죠.

현대미술 작가 니키리의 소멸은 조금 특별합니다. 그는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덕분에 자연이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자주 접할 수 있었죠. 반짝이던 별이 사라지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의 반복은 그에게는 들숨과 날숨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작가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조차 그에게는 소멸의 한 과정으로 인식됐던 것입니다. 설렜던 첫 키스도, 가슴 아팠던 이별의 키스도 모두 사라지기 위함의 과정이라니.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군요.

그의 작품을 보고 나니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단순한 허무주의는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어떻게 시작하고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떠올렸던 미움의 감정 한 톨이 훗날 별처럼 아름답게 소멸하는 것과 비 온 후 길가에 바짝 말라비틀어진 지렁이처럼 사라지는 것 사이를 가르게 될까요. 지금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나는 그저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소멸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속삭이고, 입 맞추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