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
어제 고객사 분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중 MBTI이야기가 나왔다.
INTJ라고 말씀을 드리자, 대화가 끝날때까지 한사코 나의 MBTI를 ENTJ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외향인이 될 수 없는 이유,
그건 나의 말과 나의 행동에 스스로 가혹할 정도로 복기하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누굴 하나 만나거나, 하다못해 메신저로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건 두고두고 내 머리속에서
"네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거야."
"네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을거야."
"그 사람은 이제 널 싫어하게 될거야."
"아무도 널 좋아하지 않아."
"제발 입 좀 닥쳐."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 말은,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말이냐면.
어린 시절 엄마의 비난에서부터 시작된 말이다.
그 출처가 그렇게 명확한데도 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이제는 엄마가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 갇혀버렸다.
그 수치스러웠던 느낌, 그 두려웠던 느낌, 그 불안했던 느낌
기억은 사라졌어도 감정은 남아,
끊임없이 나를 홀로 고립되도록 소원하고 있다.
차라리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고등학교 동급생 말이 떠올랐다.
결국 그 말도 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나의 마음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에 현현되어 나를 찌르게 된 것일테다.
늘 없어져버리고 싶었으니까.
중학생 일 적에 하얀 여름 체육복 등 뒤에 낙서를 하는게 유행이었다.
나는 거기에 '사멸(死滅)'이라 적었다.
그걸 알아본 국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죽어 없어지는거야?"
"네."
사람들과 깊이 관계 되는 걸 버거워하고 피하는 이유도 그것 하나뿐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비난받고 미움 받았던 나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착한 사람들은 일찍 죽던데,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게 어쩌면 반증일지도 모른다는 짧은 생각을 해봤다.
뇌
얼마나 못돼쳐먹었으면,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그렇게 죽고싶어했는데, 아직도 죽지 못했을까.
너무나 큰 죄를 지어서, 계속 계속 살아남아 그 죗값을 치뤄야하는 걸까.
이제는 그 죄가 나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용서 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더 용서해야하기에 삶이 더 이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눈앞이 캄캄하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며 겨우겨우 잠에 들어 그래도 아침에 눈을 떠지면 약간의 미묘한 감정으로 뇌되인다.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아침 일기를 쓰지 않은 지 한달이 넘어서 효력이 떨어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