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겟아웃
영화리뷰는 아니지만 요즘 버스정류장에 겟아웃, 어스 감독님의 신작 영화 광보를 보니
영화 겟아웃을 처음 봤을때가 생각이 났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고래섬을 직접 보았을때의 충격
사람을 짐짝과 같이 비좁은 공간에 실어 나르기 위하여 최면을 걸었다는 말이 있었다
어쩌면 그게 조금은 인간적인 배려라고 생각했다
맨정신으로 자신의 몸위에 양옆에 약간의 간격도 없이 그대로 쌓여있는 상태로 고래섬에서 유럽까지 항해를 생리적 욕구도 해소 할 수 없는 채오 버텨내라는 건 정말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아는 터라 더 그랬을까
겟아웃에서 최면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가두고, 전혀 다른 인격체를 주입하여 목적에 맞게 쓰다니, 이건 정말 비인간적인 “쓰다”라는 표현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우리들 역시 그런 최면 속에서 영혼을 잃고, 살고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라는 책에 나온 내면의 비판자와 박세니 작가님의 “어웨이크”에 나오는 부정암시가 바로 그것과 일맥상통했다
비단 자기 자신에 대한 가스라이팅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가스라이팅
언론과 매체, 엔터테인먼트에 홀린 사람들이 그런 상황과 같지 않나
내가 내가 아닌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종종 회까닥 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내면에서 힘을 발휘하는 증폭된 감정의 거대 괴물이 아닐까
그나마 자신이 그런 감정이나 부정암시에 휩쓸리고 있다는걸 아는 정도만 되어도 가능성은 있다
겟아웃의 등장인물들의 진짜 자아는 그걸 알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한다
영혼은 눈물을 흘린다
지난 금요일 첫 상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선생님께서는 그건 어쩌면 영혼의 눈물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위빠사나라고 하는 알아차림 명상이 강조된다
사고형인 나는 대체적으로 내 행동이나 말을 인식하지 않고, 그냥 내뱉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많은 별명 중 “인식하고 행동하는 다중이”라는게 있었다
그러고보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겟아웃의 등장인물들보다도 더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을 측은지심과 넓은 아량으로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물론 종교는 없다
어쨌든 그러려면 나부터 잘해야지
나도 알면서도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생각의 틈도 없이 절로 그렇게 행하는 경우가 있어 내내 깨름칙하게 원인을 찾곤 하니까
자청님의 역행자에서는 그냥 그런 걸 클루지에 잠식되었다고 생각하면 납득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런 여유와 지와 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