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바보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아빠가 엄마를 뒤에서 안고 계신 모습이다.
우리가 있던 없던
어린 시절 엄마아빠와 같은 방을 쓰던 때부터
티비를 보며 누워있을때면
아빠는 안방 문과 가까운 쪽에서 늘 안쪽 티비를 보면서 엄마를 꼭 안고 계셨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만해도 대대로 항아리를 만들어온 집안이라 엄마도 같이 항아리 공장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때도 엄마가 일을 하고 계시면 뒤에서 와서 꼬옥 안고 가시곤 했다고 했다.
두분은 정말 금슬이 좋으셨다.
어린 시절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딱 한번 엄마가 심하게 토라지셔서 아빠를 두고 다른 방으로 가버리시자 나를 비둘기 삼아서 이야기를 하시길래 그냥 두분이 직접 이야기 하시라고 한 적이 다였다.
엄마는 늘 아빠를 위해 매끼니마다 압력밥솥에 밥을 지으셨고, 아빠는 엄마를 위해 빨래를 걷어다 주고, 엄마가 뭘 하시는데 걸리적 거리지 않게 미리 다 손을 써두시곤 했다.
아빠는 엄마바보였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때도, 세네갈에 가 있을때도
전화를 하면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늘 엄마가 대변인이셨다.
아빠는 늘 엄마에게 “자네만 있으면 되네.”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실 때에도 아빠는 절대적으로 엄마 편이었다. 참다 못한 내가 한번 엄마에게 화를 내며 대들었을때, 아빠는 생전 처음으로 나를 직접 호되게 혼내셨었다.
그게 32살 때의 이야기다.
아빠는 2017년도에 돌아가셨다.
32년을 함께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시다가 혼자가 된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둘이 자니까 좋다.”
잠결에 나를 안으시며 하시는 엄마의 말에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미지의 감정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일년에 몇번 보던 내가 감히 엄마가 감당하셨을, 그리고 감당하고 있을 그 허전함과 공허함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알 수가 있을까
자식이 부모를 잃은 슬픔과
세상에 믿고 의지하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의 깊이는 얼마만큼의 깊이와 둘레의 차이가 있을까
“아프리카에 가면 딸 못 보잖아.” 하시는 말씀보다
“둘이 자니까 좋다.”하신 말씀이 또 내 발목을 잡게 생겼다.
기회를 봐서 남동생도 엄마랑 같이 시골집에서 출퇴근하도록 유도를 해봐야겠다.
효자 할거면 풀코스로 남동생이 다 해줬으면ㅋㅋ
엄마 사랑은 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