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화
내가 지금까지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살며
낮은 자존감으로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맞추면서
나 스스로 엄마의 비난에 대항하여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야.”라며 증명을 해내려 애썼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까
유년기엔 대체로 생존을 위해서 이기적이고 못될 수밖에 없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을 통해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고, 엄마의 뱃속에서 양분을 취해 자라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미 정자는 경쟁 본능을, 잉태된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한 이기심을 갖지 않고선 그저 그렇게 잠시 스러지는 세포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사회화를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더 이상 살아남아야 하는 세포덩어리, 혹은 약하고 작은 존재로 써가 아니라 살아남은 어엿한 인간으로 변모하기 위해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을 많이 받았고, 어른들이 대체로 오냐오냐 했던 것 같다.
꽤나 이기적이고, 동생에 대한 배려가 없던 것 같다.
동생들이 너무 귀찮았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 상태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엄마의 비난으로부터 깨닫고는 끊임없이 애썼던 걸
그런데 이제 보니 지금의 나는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을 필요도, 믿음 받는다고 사라질 존재도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이타적으로
그냥 적당히 나 좋을 대로 살아도 되는
어엿한 독립된 개체지 않나
성장기의 구간 별로 배우고, 깨닫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한다. 유아교육을 한 친구의 말로는 정말 일춘기, 이춘기, 삼춘기, 사춘기, 오춘기 다 있다고 하니 아,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불혹을 앞두고 있으니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굳이, 이제 애쓰진 말자.
할 만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