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13 시간 계획 없는 하루

외줄 타기 하듯 불안불안

by Noname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시간 계획이 없는 하루를 보냈다.

혼자 하루를 보내면서 이렇게 시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운동, 청소, 공부 정도만 정하고, 언제 뭘 할지 정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정하는 편이라 하루 종일 뭔가 외줄 타기를 하듯 불안한 느낌이 올라왔다.


시간을 정하지 않으니, 운동도 2시간을 넘게 했고, 청소도 하염없이 했다.


공부는 아침에 조금 하다가 운동이 가고 싶어서 또 내팽개치고 운동을 다녀왔다.


운동을 하고 나면, 힘도 들고 나른해지기도 하고, 잔여 에너지로 부산하게 뭔가를 하는 편이라

에너지를 아껴서 공부를 하려면 운동은 가장 나중에 하는 편이 효율적일 텐데도 어떻게 된 게 운동을 하기 전까진 종일 운동 생각 밖엔 하지 않는다.


선생님 말씀대로 뇌가 근육의 지배를 받은 지 오래된 것 같다.


계획 없이 시간이 무한한 듯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내게는 외줄 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아마 이건 나의 욕심 탓일 거다.

하고 싶은 게 많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그걸 다하려고 욕심을 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게 되는 것


여행에 빗대어 보자면(물론 난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시간과 예산이 많다면 하루에 갈 곳 하나만 정해놓고, 느긋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빠듯한 시간 안에 많은 걸 한정된 예산 안에서 처리하기 위해서 촘촘하게 스케줄을 세우게 마련이다.


유럽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대학생 시절 유럽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행군 수준의 일정을 강행하는 걸 봤었다.


나는 사실 개인적인 뿌듯함을 위해서 시간 계획을 세운다.

2015년도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에도 2박 3일 일정동안 다른 분들이 이동한 거리와 시간 등을 계산하여 초행이고, 혼자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동 거리와 시간을 분단위 km단위로 계획해서 계획된 기록을 단축하는 데에 희열을 느꼈었다.


그러니 나는 매일 스스로 그런 뿌듯함과 희열에 중독되어 있는 셈이다.


그걸 다른 말로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살다 보면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관계가 복잡할수록 그 변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프로젝트 관리에 나오는 의사소통 복잡도는 n(n-1) / 2이다.


그러니까 10명의 이해관계자가 있는 경우, 10*(10-1)/2 = 45의 복잡도가 나온다.


내 인생의 PM이자 품질관리자인 나는 그걸 효율적으로 수행해 내고 성과와 보람을 통해 삶의 재미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어느 정도 감이라는 게 생겨서 일에 있어서도,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시간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긴 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상황에 민첩하게 맞춰 대응하기는 전 직장에서 수없이 실전 경험을 했다.

그래도,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기까지는 물길이라는 게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그 물길을 아주 멋지고, 견고하게 만들고 싶다.


오늘, 그동안 모양새를 갖추 가는 물길에 얼추 비슷하게 잘 흘러간 하루.


그래도 아직은 멀었다. 이 불안감 마저 없어지고, 자기 신뢰가 확고하게 다져지기 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


그러니까, 공부를 좀 미리 해두면 얼마나 좋아! 개구쟁이 상아키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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