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다
명절을 맞이해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네가 그 힘든 시기를 혼자 견뎌낸게 정말 위대해.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어서 상상이 되지 않아. 그리고 네 가 집에 이것저것 붙여놓은걸 보고 그때 알았어. 너는 지금도 노력중이라는 걸.”
정신과약을 먹는 기간은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기간과 비례한다고 한다.
사건을 핑계로 약을 먹었다지만 처음 상담때 6개월 이상을 이야기하신 을지로의 유명 정신과전문의 선생님께서 차도를 지켜보며 2개월만에 끊어도 된다고 하신건 제법 신빙성이 있다.
사실 예민한 성격 덕에 내 감정들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했고, 그 감정들과 함께 지내보기 위해 애를 써온 시간이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짧게 끊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어쩌면 그냥 평범하게 느끼는 감정들을 내 스스로가 우울증이라고 과민반응 했을 가능성도 적진 않다. 그렇지만 자살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전국민의 70퍼센트라는걸 보면 또 정상은 아니었다.
자신이 우울증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시작한 시점부터 치료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대부터 스스로에대한 분석도 많이하고, 운동도 많이 했고,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것이긴 했다. 고통을 잘 견디는 편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쩌면 내 죄책감이 나에게 선고한 40세 자살형의 날짜가 다가오자, 겁이 난 나머지 갑자기 살고 싶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역시 나이가 들어서 집착적인 삶의 욕구가 올라온지도
지나간거니 그냥 그랬으려나, 한가한 오늘 같은 날 대충 생각해보는거다.
그러나 어쩌면 스위스 존엄사가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나서, 깔끔하고 우아하게 죽을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가장 큰건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의 사랑을 이제 정말 느낄 수 있는 심장이 생긴 덕일거다.
어떻게보면 나는 7살때부터 우울증이었다.
매일 나를 보면 너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됐다며 죽어버리겠다하시던 엄마의 원망과 나를 직접 챙긴적은 없던 아빠도 그걸 증폭시켰으면 시켰지 더 나아질 일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고등학생때부터 집을 나와살면서 아주 서서히 매우 느린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친구를 만나서 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내 존재의 구심점으로 여기는 존재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인거고
20대에는 조울증이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건 상대적이니까 정상범주였는지도 모르지.
아빠의 죽음에 따른 트라우마의 재발현이 30대를 뒤흔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평안한 상태는 맛보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정한 상태로 나는 그래도 괜찮다며 바득바득 힘들게 버티고 살았겠지.
약 좀 먹으면 금방 해결될걸
감기약 안 먹고 버티는 것과 같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노력중이다.
두달간 정신과약을 먹은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벌써 1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 것, 2년째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 역시. 지난 몇년간 명상을 배우고 해온 것도 그렇다.
그덕에 인간관계도 내게 좋은 관계만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어떻게 나를 애지중지 보살피고 있느냔 말이다.
그래도 한결같이 처음엔 매우 잘한다.
마냥 잘해주다보면 알게 된다.
상대방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성인군자가 아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거라는 오만함을 버려야한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사실 그 누구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을 시들게하는 관계는 끊어내야 한다.
그게 먼저다. 그게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러고보니 아빠가 돌아가시고, 서서히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서야 편안해진것 같다.
어린시절 엄마 아빠와 멀어지고서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한 것과 같다. 그리고 여동생과의 적정거리 유지까지.
가족에 대한 의무와 애정의 욕구를 포기하면 된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그보다 큰 가스라이팅은 없다.
내게 해로운 건 무조건 일단 멀리해서 나부터 살아야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든 말든 할 수 있다.
늘 노력한다. 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계속 혼자인지도 모른다.
혼자서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왔던게 아니라
혼자여야만 견뎌낼 수 있던 날들이 길었던 탓이겠지
언니가 단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던 것처럼
단 한번도 내 곁을 어떤 절대적 존재에게 내어준 적이 없다.
그러니까 누굴 믿고 의지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지금도 나는 누구에게도 내 개인적인 일을 부탁을 하지 못한다.
좋아지고 있다.
친구들과 여동생에게는 그래도 커피 정도의 것들은 부탁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