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name Mar 03. 2024

마흔-281 와르르

무너졌다.

진단해보자. 

그동안 여러가지 일들이 누적되어 있었다. 

게이지는 차오르는데 명상을 할때, 내가 응당 느껴야할 감정들을 도외시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 스스로에게도 허세를 떨었다. 


"나는 강해."

"나는 상처받지 않아."

"마음대로 말하라그래."


아니, 나는 상처 받아 갈라지고 있었다. 

젠가의 블럭을 하나씩 빼듯 

나의 마음은 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질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크게 상처받는 개복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강한 척 허세를 부렸다. 


지난 밤 꿈에 내가 임신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왠 인형의 아주 작디 작은 필통같은 몸통에 그 태아를 넣어서 어딘가로 이동을 해야만했다. 


이동할 시간이 다가오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고 있는데, 내 손에는 검붉은 태아가 들려있었고, 

그 태아의 머리와 두 손에는 흡사 말미잘과도 같이 무수히 많은 손가락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징그럽고, 무서웠지만, 나는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꿈이, 바로 이 무너져버린 감정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라는 걸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잠에서 깨어 부리나케 헬스를 다녀오고, 충분히 즐거웠다. 

연애는 포기했는대, 메이크업을 하는 유투버들의 아름다움과 노력을 보면서 

역시 나는 안되겠구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은 없는가보다. 

그렇게 집에 와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마음으로 축복까지 해주었는데.


세상은 참 내 맘같지가 않다. 


5시간을 내리 울었다. 몸이 다 아플정도이다. 아니 사실은 어제 오늘 운동을 양껏 한 덕에 근육통이었을테지. 

어쨌더나 몸에서 정기가 다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다. 


그동안 허세를 부린 대가이다. 


오후에 2주 후에 모일 모임을 나가지 못하겠다고, 사과를 했다. 

나 외에 모두 가정이 있는 분들이셨고, 대화의 주제는 어쨌더나 피할 수 없는 내가 갖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임이 뻔했다. 


"모임에 초대해주시고, 저를 고려해서 예약을 잡아주셨지만 죄송하게도, 제가 요즘 여러가지 일들도 있고해서 자격지심이 심해졌습니다. 모임에 저 외에 모두 가정이 있으시니 감히 추측컨데 제가 대화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여 모임에는 참석하기 어렵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뭐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말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다. 


한참 울고있는데, "상아야 괜찮니?"하고 말을 걸어오셨다. 


"그래, 너 그동안 글 올라오는 거보고 위태롭다고 생각했어. 너는 충분히 멋지고, 좋은 사람이야. 힘내, 항상 응원하고 있어. 필요하면 언제든 밥을 먹든 티타임이든 요청하고!"


또 눈물이 났다. 대체 이 분은 어디까지 따뜻하고 멋진 사람인걸까. 푹 자라고 라벤터 디퓨저까지 보내주셨다. 

그러고보니 나는 인스타고, 어디고 모든 곳에 나의 모든 걸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나의 취약점, 누군가가 보기엔 약점일 수도 있는 것들.

나조차도 부끄러워 게시물을 숨긴 것들까지.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금까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노출 시켰고, 내가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또한 그렇게 아끼고 사랑해주는데, 나는 대체 뭐가 부족했을까. 


초등학생 시절 친구가 물었다. 


"너는 한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니면 여러 사람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여러 사람한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사람이 죽으면 너무 슬플거 같아."


그땐 몰랐다. 한사람이 죽는 것도 슬프지만, 여러사람이 한명씩 사라지는 것도 슬픈일이 될거라고는. 

그래서 기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내가 먼저 사라지고 싶다는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와서 세상이 그러한 사람을 앞에 모셔다 주었을땐 뿌리치더니 

이제와서 생이 꽤나 길어질 것 같아지자 태세를 전환하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두려웠다. 

혼자서 늙는 것이. 

역시나 고독사는 두려운 일이었는데, 

그걸 모임까지 만들어서 히히덕거린 철없던 시절이 떠올라 또 부끄럽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282 그건 착한게 아니라 비겁한 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