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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04. 2023

아들과 함께 쓰는 계룡산 산행기

- 습도 90%에 올랐던 여름 산행기

인수의 산행기


7월 10일 토요일 오후 6시 출발. 우리 가족 전부 같이 갔다. 계룡산까지 가는데 2시간 30분 걸려서 저녁 8시 30분에 도착. 도착해서 뭐 하지도 못하고 과자 먹다 잤음. 다음날 아침 8시에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7시쯤에 잘 일어났는데 엄마가 그냥 8시까지 더 자라고 했다. 그래서 또 8시에 깨서 준비하자고 했더니 8시 30분까지 자라고 했다. 그래서 8시 30분에 일어나서 짐 정리하고 밖에 나가서 버섯불고기 정식을 먹었다. 맛있었지만 동네에 있는 식당보다는 맛이 없었다. 어쨌든 밥을 먹고 등산로 입구를 찾았는데 엄마가 입구가 2개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입장료를 내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입구는 무료로 갈 수 있다. 거리는 두 입구가 0.2km 정도 차이가 났다. 그래서 ‘어차피 거리도 비슷한데 한쪽만 입장료를 받으면 누가 거기로 가지? 굳이 구태어 안 내도 되는 돈을 내면서 산에 갈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랑 엄마는 산에 가고 아빠랑 동생은 근처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료로 갈 수 있는 입구로 가서 출발했다. 밖에는 오지게 더웠는데 입구 들어가자마자 시원했다. 그런데 시원하지만 오지게 습했다(나중에 서울서 알아보니까 습도가 90%대). 입구 지도 앞에서 내려올 때는 어떻게 내려올지 모두 정하고 갔다 중간에 동학사라는 절이 있다. 올라올 때랑 내려갈 때의 코스가 다른데 내려올 때 코스에 있는 절이다. 거기에 주차장이 있는데 그 주차장으로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달라고 정상에서 전화하기로 했다. 입구 들어갈 때의 느낌은 ‘그래도 시원해서 잘 갈 수 있겠다.’였는데... 는 무슨 조금 들어가자마자 바로 정말 오지게 덥고 습도도 높아서 땀 오지게 나고 벌레 오지게 나오고 눈앞에서 날파리가 오지게 돌아다녀서 ‘아 빨리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난 원래도 집돌이라서 맨날 어디 여행 가면 집에 빨리 가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페이스를 올렸다.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해서 페이스를 올려도 오래 쉬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산에 갈 때는 엄마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냥 거의 마지막까지 처음 그 속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중간에 엄마 기다리느라고 좀 많이 쉬었다. 그래서 결국에 속도는 평소보다 살짝 빠른 정도였다. 


그런데도 땀이 오지게 나고 벌레 많이 있고 모기가 물고 물은 미지근하고 해서 계속 속도가 느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흰 도복에 희고 긴 머리, 흰고 긴 수염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도인 할아버지가 내려왔다. 근데 그때는 와 신기하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도인이든 뭐든 빨리 가자.’라고 생각해서 그냥 휙 지나갔다. 근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들이 다 우리를 추월해 가서 상대적인 속도 차이가 보이니까 짜증도 많이 났다.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애들도 우리를 추월해 가니까 싫었다. 마지막 1km 남았을 때는 가져간 물이 그냥 온수가 되어 빨리 정상 찍고 내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경치 볼 여유도 없고 엄마랑 말할 여유도 없고 그냥 최대한 빨리 등산했다. 결국에 정상은 못 찍고 0.5km 앞에 있는 남매봉까지만 갔다. 거기에 약수터가 있어서 약수를 먹었는데 약수도 미지근했다. 그리고 남매봉이 왜 남매봉인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와 불교의 어떤 가르침이 있었던 거 같은데 굉장히 흥미로웠고 유심히 두 번씩 봤다. 


정상에서 시간을 보니 11시~11시 30분 정도였다. 그래서 아빠한테 12시 30분에 동학사로 데리려 오라고 했다. 내려올 때도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가파른데도 최대한 빨리 내려오려고 했지만 그래도 조심하느라고 좀 느렸다. 그래도 12시 30분까지는 갈 것 같았는데 갑자기 엄마가 아빠도 동생이랑 물놀이하고 있을 거니까 우리가 내려오는 것보다 데리려 오는 게 느릴 수 있다고 했다. 엄마가 갑자기 그러니까 좀 불안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도 1km 더 걷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내려올 때는 땀이 식어서 모기가 오지게 물었다. 총 8대 물림. 그중에서 왼손 1대 오른 다리 7대를 물렸다. 어찌어찌 힘들게 동학사까지 내려왔다. 동학사에서 내가 엄마한테 “아빠 어딨냐?”라고 했더니 엄마가 “아빠가 동생 데리고 오는 것보다 그냥 우리가 내려오는 게 빠를 거야.”라고 해서 내가 “연락 안 했어?” 물으니 묵묵부답. 그래서 그냥 엄마가 “아이스크림 줄 테니 그냥 내려가자”라고 해서 내가 그럼 뛰어가자라고 했는데 엄마가 “엄마는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느라 못 뛰어~”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걸어 돌아왔다. 산 내려와서 아빠를 찾았는데 아빠랑 동생이 있던 계곡에서 어떤 남자애가 오지게 울었다. 한 50미터 떨어진 곳까지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랑 엄마는 먼저 근처 카페에 가서 주스 먹고 있었다. 한 10분 뒤에 아빠랑 동생도 물놀이 정리하고 왔다. 그 카페에서 노래가 나왔는데 아빠가 없을 때 아빠의 애창곡이 나왔다. 그리고 그냥 케이크에 주스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산행기


더운 한 여름이 되니 연이어지던 행사들이 멈춘다. 드디어 아이가 가보고 싶다는 계룡산을 다녀왔다. 계룡산은 코스마다 차이가 있지만 동학사에서 정상까지 갈 경우 4시간 정도 걸리다. 아이와 갈 땐 한 시간 정도 야 하니 5시간 거리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나보다 더 커져 4시간으로 잡아도 될 것 같았다. 동학사 코스로 올라 원점회귀할지, 완만하게 올랐다 가파르게 내려오는지만 선택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숙소에 밤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계룡산 입구 캠핑장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다.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만실이었던 묵고 싶었던 숙소들을 다 지나서야 도착했다. 계곡 바로 앞이지만 편의점과 음식점이 많았다. 밤 산책 겸 함께 나가 마실 음료수와 간식을 사 오며 보니 주변이 잘 정비된 유원지 같았다. 내일 일찍 가야 덜 더울 텐데 싶어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싶지만 그냥 두었다. 가족 여행에서 나 혼자 급해 서두르다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이들을 간식 먹으며 각자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뒹굴거렸고 남편과는 맥주 한 캔씩 나눠 마시며 TV에서 하는 ‘로마의 휴일’을 봤다. 흘러가는 대로 두긴 하는데 여름 산은 처음이라 걱정되었다.  


6시에 눈이 떠졌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미동도 없다. 지금 출발해 가면 12시 전에 내려올 수 있다. 가장 더운 시간은 피할 수 있다. 깨워 갈 자신은 없다. 아이들은 푹 자고 나야 그나마 잘 오른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차마 깨우진 못하고 7시도 넘고 결국 8시도 넘어서야 모두 일어났다. 기다리며 나는 슬슬 화가 났다. 방 안에서도 땀이 나는데 산에 어떻게 오르나 싶다. 아침 먹을 음식점을 찾아가다 애꿎게 “식당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아!” 라며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남편이 그럼 가고 싶은 데로 가라는데 나라고 알 턱이 있나. 어렵게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백반집 찾아 먹고 나오니 남편과 딸은 계곡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둘째를 데리고 오르느니 그게 낫다 싶으면서도 나는 고생하러 산에 가고 남편은 계곡서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참말로, 산에 가자고 하는 건 나였는데도 고생하기 싫다며 드는 이 마음을 어쩔꼬. 아침부터 날이 이렇게 찌는데 산으로 오르려니 한숨이 나온다. 그 와중에 아들의 등산화가 없다. 남편에게 발이 커진 아들의 등산화를 사자 했더니 자기 거 신으면 된다고 해서 알았다며 그냥 온 터였다. 그런데 차 트렁크에서 꺼낸 아빠 등산화가 아이 발에 작다. 남편이 당황해서 더 늘어진 오래된 등산화를 가져온다. 그것도 맞지 않는다. 그나마 아들이 미끄럼 방지가 돼 있는 새로 산 크록스 샌들을 신고 왔다. 일단 샌들이라도 신고 출발하기로 했다. 내 마음에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짜증이 그득하다. 어머! 산에 들어서니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아, 여름 산이 이런 맛이 있구나. 바람이 부네.’ 머리끝까지 올라왔던 짜증이 발바닥까지 내려간다. 바람에 다 날아간다. 땅은 비가 왔는지 적당히 젖어있다. 발에 흙이 묻어날 정도는 아니다. 초입이라 그런지 양복차림에 올라온 사람이 있다. 동네 뒷산처럼 오르는 산인가 보네. 그렇지만 양복쟁이도 옷이 흠뻑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엄마 안 와?” 

오늘은 유난히 아이가 먼저 앞장 서가며 나를 재촉한다. 저만큼씩 앞서가며 기다리는 눈빛을 보낸다. 얼마 전 검도 사범님이 호구 쓰고 대련하는 영상을 보내왔다. 검도 처음 시작할 때 저런 건 다 큰 성인들이나 쓰나 보다 했는데 어느새 실력이 늘었다.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가 커버린 게 느껴진다. 오르막길을 가다 보니 팔이 간질간질하다. 만져보니 송알송알 맺힌 땀들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땀이 아니다. 물이다. 최대한 가볍게 입은 조깅 티 사이로 노출된 등 짝도 만져보니 손바닥 가득 물이 묻힌다. 기다리던 아이와 만나 물 한 모금 마시며 보니 아이도 온통 땀범벅이다. 수건으로 연신 닦아대고 있다. 


“계룡산에서 도사들이 수련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늦게 올라와 그런지 안 보이네? 어디서 수련들 하시려나……” 

“내가 어떻게 알아.”

퉁명스러운 대화가 오가는데 마침 흰 도포자락에 흰 생머리를 길게 묶으신 도사님이 하산하신다. 나도 모르게 꾸뻑 인사를 했다. 뒤돌아보니 등에 맨 바랑도 흰색이다. 멋진 지팡이를 짚고 지나갔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우와, 계룡산 클라스~” 


아이에게 왜 이렇게 느리냐는 말을 계속 들었다. 아이 주변에 까만 산 모기가 맴돌고 있었는데 모기들이 차마 몸에 내려앉지를 못하고 있었다. 앉는 순간 발이 물에 젖어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리라. 모기가 많아도 여름 산이 이래서 오를만하구나. 남매탑에서 만난 모두가 흠뻑 젖어있다. 옷도 젖어있고 머리도 젖어있다. 가방을 벗으면 등도 젖어있고 가방도 젖어있다. 몸과 붙은 모든 곳이 젖어있다. 남매탑은 사회 통념대로 부부로 엮이지 않고 평생 수행하며 돌아가신 스님과 공주님을 기리는 탑이었다.  우애 좋은 남매에 관한 탑이라 생각해 아들에게 여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려 했는데 아니었다. 여기서 정상 삼불봉까지 0.5km가 남았다. 정상까지 가지 않고 하산하기로 했다. 아들은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정상까지 가자고 하는 편인데 오늘은 이견이 없다. 내려오는 길에 땀이 식으니 모기가 극성이다. 아들은 양말 속까지 물렸다고 했다. 나는 계속 움직였지만 먼저 가다 나 기다리다 할 때 모기에 물린 모양이다. 그러게 잘 씻어야지 소리가 나올 뻔했다. 내려오다 계곡 물에 풍덩 몸을 담그고 헤엄치는 사람을 봤다. 여름 계곡의 진정한 맛은 저거구나! 산을 올라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뛰어들어 빠져야 하는데 여벌옷이 없다. 아들과 다음번 여름 산행 때 꼭 계곡 입수를 다짐했다. 


다 내려와서 다리를 건너는데 아들이 설악산이 생각난다고 했다. 바로 큰길과 이어지니 여기는 우이암 길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동안 다닌 산 길들이 아이 속에 남아있다. 온몸이 젖어 있어 동학사를 들리지 않고 내려갔다. 아들은 아빠가 데리러 오는 걸 기대하고 있으나 남편은 둘째와 계곡놀이를 정리하고 오려면 시간을 맞추기 힘들 것 같았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가는지 올라오는 길에 차들이 정체되어 있었다. 나에게 보이는 이 상황을 큰 아이에게 설명했는데 아빠 차를 타고 얼른 쉬고 싶은 마음이 커서 잘 안 들리겠지. 일단은 시간 끌며 달래자 싶어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보이길래 먹이며 내려왔다. 결국 어제 숙소였던 곳까지 내려와서야 아직 계곡에 있는 남편과 딸이 보인다. 계곡 따라  한참 위까지 우리를 만난다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참이라 했다. 딸은 다리 아래서 처음 만난 언니들 사이에 껴서 잡은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있다. 둘째는 계곡에서 네 시간째 재밌게 놀고 있는 중이라 했다. 각자 시간 잘 보냈구나! 함께 하지 않길 잘했다.

13세, 이제 산행을 막 마친 아들에게 얼른 뭐든 먹이기 위해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빵을 먹이고 좋아하는 음료를 고르게 했다. 여러 번의 아들과 산행 경험으로 하산 후 무얼 먹을까로 부딪히지 않는다. 휴게소에 들러 소떡소떡을 3개를 먹는 아들을 보며 대신 김밥을 먹을 것을 슬쩍 권해보는데 싫다고 한다. 소떡소떡 3개가 밥값을 넘어섰다. 효율로 따지자면 이런 비효율이 없지만 네 가족이 큰 다툼 없이 여행을 다녀왔다. 심지어 등산을. “계룡산에 왔는데 산채밥도 안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도 안 하고”라며 다투던 이유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계령산이 용하긴 용한 산이다. 


집에 와서 보니 커피숍에 아들 등산가방을 놓고 왔다. 소파 옆에 내려놓는 걸 본 사람은 있는데 나올 때 챙겼다는 사람이 없다. 커피숍에 전화 걸어 택배를 부탁했다. 오늘 계룡산의 오전 습도는 90%였다. 오후 습도는 80%였다. 몸에 흘러내렸던 것은 땀이 아니라 물이라 느꼈던 게 맞았다. 아들과 나는 사우나 습도 속을 다녀온 셈이다. 그런데 그 여름 산은 매력이 있었다. 왱왱거리지만 물지 못하는 모기. 앞, 뒤 머리 할 것 없이 흠뻑 젖어 오르는 등산객들, 내려와 계곡 물에 풍덩 하며 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다음 여름에는 여벌 옷 하나 더 챙겨 계곡 입수로 마무리하는 산행을 기약해 본다. 진심으로 추천한다, 여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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