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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Dec 01. 2023

도전! 한라산!

아직 마스크 써야 하는지도 모를 코로나 초기 때였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자주 어울리던 이웃집과 왕래도 조심스러워졌다.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가정보육 권고지침이 내려왔다. 긴급보육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일상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여겼으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보면 아이 혼자 있을 때도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었다. 큰 아이가 다녔던 대안학교도 우왕좌왕했고 작은 학교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반학교가 문을 닫자 같이 닫기로 결정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에 갔다. 제주는 텅 비어 있었다. 금능 바다 근처에 마당이 있는 돌담집에 묵었다. 집 마당 출입구가 건물 등 쪽으로 나 있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권고대로 외부 사람과 마주칠 일이 적었다. 작은 숙소여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10살과 4살 아이들은 마당에서 그네를 탔고 데크에 앉아 햇볕을 쪼였다. 마트에서 이 삼일 치 장을 봐와 텅 빈 냉장고를 채우고 매 끼를 만들어 먹었다. 공항 식당에서 먹었던 비빔밥을 흉내 내 만들기도 하고 대부분은 계란, 제주의 신선한 야채, 해산물 구이로 간단한 식사를 이어갔다. 낮 시간은 마당에서 보내다 해 질 녘에 바다까지 걸어갔다 오면 어둑 해 졌다. 그러면 곧 있다 별이 뜨고 달이 나타났다. 초저녁인데도 주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할 게 없으니 숙소에 몇 권 안 되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해야 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게 이어가니 도시에서 잃었던 밤잠이 내게 찾아왔다. 찢어질 듯 얇아져가던 내 안의 경계막이 다시 단단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제주도에 지인 가족이 찾아왔다.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 아이들과 집에만 있다가 내가 있다는 얘기에 짐을 쌌다고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숙소를 잡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름에 올랐다. 대접을 엎어 놓은 듯한 새별 오름이었다. 주차장에서 보면 오름의 왼편을 둥글게 올라가 오른편으로 둥글게 내려가는 사람들이 한눈에 보였다. 마구 달음질쳐 올라가는 아이들의 모습도 한눈에 보였다. 오름을 다녀오니 한라산이 가고 싶어졌다. 제주 오름들의 어머니 아닌가. 한라산을 올라보고 싶어졌다. 


남편이 찾아온 주말에 함께 한라산에 갔다. 성판악 등산로로 들어서니 야트막한 야자매트 길이 시작되었다. 어린아이와 오르기 만만한 길이었다. 구멍 뽕뽕 난 검은 현무암 길과 오래된 숲이 주는 느낌이 있었다. 너무도 낯선 풍경에 유명한 산이라 언제 오지 않았을까 잠시 헷갈렸지만 처음 온 것이 확실했다. 바닥의 검은 돌도, 주변에 핀 꽃들과 나무가 육지에서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얼마쯤 가니 사람들이 멈춰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곁에 가서 보니 한라산 기슭에 사는 사슴 무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뿌연 안개 배경으로 서 있는 사슴들은 천상에 있는 듯 보였다. 사슴들의 색도 처음 보는 연갈색이 도는 잿빛이었다. 아이들이 넋을 놓고 보았다. 기다리다 보니 한이 없어 이런 식으로 가다 언제 갈지 몰라 큰 아이와 내가 앞서가기로 했다. 아빠와 둘째는 천천히 올라오기로 했다.


큰 아이와 속밭 대피소에서 쉬었다. 주변에 화장실 가는 길이 공사 중이었는데 헬리콥터가 공사 자재를 싣고 왔다. 대피소 창 밖의 모든 나무 가지와 잎들이 헬기 바람에 정신없이 흔들렸다. 헬기는 착륙하지는 않고 공사장 근처에 보따리만 내려주고 갔다. 소리가 멈추고 흔들리던 나무들도 멈췄다. 아들과 나도 다시 출발했다. 


완만한 길이 이어지다 사라오름 근처부터는 오르막 경사가 나왔다. 뒤따라오던 청년 둘이 우리를 앞서가면서 진달래 대피소에 오후 1시 안에 도착해야만 그 이후 구간을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등산앱을 켜서 확인하니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남은 거리는 1.5km, 예상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되었다. 시계는 열두 시가 조금 못 된 시각을 가리켰다. 빠듯했다. 청년들은 뛰기 시작했다. 우리도 뒤따랐다. 계속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숨을 헉헉대며 계단에 앉아 있는데 내려가던 아주머니가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얘를 이렇게 뛰게 하냐고 한다. 아이가 기어이 해내려 하는 게 보인다. 힘을 짜내 오르다 한 소리 듣고 나니 힘이 빠져버렸다. 아들과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고 진달래 능선을 못 가고 하산하기로 한다. 아쉬워하며 터덜터덜 내려오니 속밭 대피소에 남편과 딸이 쉬고 있다. 


뉴스에 일반학교 휴교 연장이 발표되었다. 한 주 더 머물며 한라산을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이번엔 아침 일찍 출발했다. 숙소가 있던 바닷가에서 한라산까지는 아이를 차에서 재우며 갔다. 아침 식사도 하고 도착했는데 일곱 시 반이었다. 주차장도 자리가 많았다. 1시 안에 진달래 대피소를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시각이다. 그런데 해발 750m에 있는 성판악 주차장엔 새벽바람이 쌩쌩 불었다. 낯익은 등산로에 들어섰더니 아이가 몇 걸음 가더니 멈춰 선다. 

“엄마 나 추워. 더 못 가겠어”

경량패딩도 입고 목도리로 귀까지 둘렀건만 아들은 씽씽부는 바람기세에 사기가 꺾였다. 초입만 통과해 숲으로 더 들어가면 바람이 잦아들 것 같은데 나에겐 아이를 밀고 갈 재간이 없었다. 남은 9km 밀고 갈 없는 노릇이었다. 한라산의 아침 바람은 내가 느끼기에도 거셌다. 이렇게 한라산에 오를 기회를 날린 게 애석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 돌아가자”


코로나가 피크를 알 수 없게 가고 있다는 뉴스와 주식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함께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도 혼란스러웠고 내 안도 혼란스러웠다. 아이들과 애초에 길게 숙소를 잡고 렌트를 했으면 비용이 덜 들었을 텐데 일주일씩 연장하니 비쌌다. 한 주 더 있기로 하면서 민막집으로 옮겼다. 주인집과 마당을 같이 쓰는 숙소였다. 한라산 정상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옮긴 숙소 마당에 동물들이 많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둘째가 눈만 뜨면 마당에 나갔다. 새끼 고양이가 태어난 상자도 찾아가 보고 주인집 창 아래 기니피그 숙소에 가서 먹이도 주었다. 제주에서 잘 자고 잘 쉬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갔다. 첫째는 주인집 아들과 놀러, 둘째는 동물 보러 마당서 각자 바쁘니 여행가방에 넣어온 원고를 다시 볼 시공간이 생겼다. 주인집에 어른들이 함께 있다는 것도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아이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노는지 나도 보지만 이웃 어른들도 함께 보고 있었다. 일상에서 깨졌다고 느끼던 것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함께 보던 관계들이 모두 단절되어 갔었다. 언제 다시 회복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비슷하겠지만 어디가 힘들었는지 알고 가니 이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새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들과 나는 마지막이 될 한라산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아침을 가늠했다. 간식을 사러 간 편의점에 아이와 일부러 같이 가서 깨어 있게 했다. 주차장은 만차였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성판악 매점에 또 일부러 따뜻한 어묵도 먹으며 아이 컨디션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아이가 이제 오르자고 할 때까지. 그리고도 천천히 움직였다.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지 않게. 그 어떤 것에도 되돌아가지 않게 신중하게 움직였다. 진달래 능선까지 시간 내에 충분히 도착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왔을 때 사슴을 만났던 길을 지났다. 속밭 대피소에 들려 물 한잔 마시며 쉬었다. 사라오름 들렀다 가도 시간이 충분했다. 아들과 사라오름도 들리기로 했다. 사라오름은 한라산에 있는 386개의 오름 중에 가장 높은 오름으로 해발 1324m에 있어 정상까지 가지 않고 사라오름까지 다녀가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호수가 갑자기 나타났다. 숲에 폭 쌓여 있는 동그란 호수였다. 맑은 물이 담겨 있어 호수 바닥이 다 비쳐 보인다. 이 주변으로 새벽이면 사슴들이 모여드는 상상이 된다. 한라산에 사는 동물들의 약속장소일 것 같다. 사라오름에서 올려다보니 한라산 정상부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드디어 진달래 능선에 도착했다. 11시 47분이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충분했다. 대피소 안과 밖에서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안에서 식사를 하고 데크길을 따라 주변 식물과 풍경을 구경했다. 시간이 다되어 가길래 백록담으로 가는 문을 통과했다. 한 사람이 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가 통과할 때 통제시간이 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달래 대피소까지 3시간이 넘게 걸어왔고 여기부터 두 시간 정도를 더 가면 백록담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 길이 아니라 위로 완만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제주도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제주도가 얼만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장관이었다. 쉬면서 간식을 먹으려 보니 아이가 가방에 넣어온 양파링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고도가 높은 게 실감되었다. 해발 1950m 정상에 도착했다. 하늘은 선물처럼 맑았고 백록담엔 물이 말라 있었다. ‘한라산 백록담 1950’이라고 쓰여 있는 고목에 올라 사진도 찍고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이라 쓰여 있는 화강암 정상석 옆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산 제한 시간이 있어 2시에는 모두 정상에서 내려가야 했다. 


내리막길은 쏜살처럼 뛰어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 반이 넘어 있었다. 아들은 산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머릿속까지 땀에 푹 젖어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남겼다. 아들의 산행기록에 아빠가 못 가본 큰 산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그것도 세 번 도전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총 열 시간이 걸리는 산행이었다. 아이와 어떻게 그런 산을 갈 생각을 다 했을까. 편도 4시간 반 걸린다는 안내판을 왕복시간으로 착각하지 않고서야 아예 엄두를 못 냈을 것 같다. 한라산이 오르기 편하다 해도 오래 걸으면 힘든 법이다. 길은 쉬웠는데 오래 걸어야 해서 힘들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 한라산에 눈이 왔다는 뉴스가 들렸다. 공항 가는 길에 한라산 중턱에 주차하고 아이들과 눈놀이를 했다. 늦은 봄,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던 우리를 품어준 한라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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