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나무 Oct 19. 2023

엉망이 된 산행, 금학산.

7살인 둘째가 어린이집 친구들이 캠핑 간다는 소식에 자기도 가고 싶다며 속상해했다. “그럼, 우리도 모험을 떠나면 되지!” 그렇게 이번 산행엔 둘째가 포함되었다. 연휴라 남편도 갈 수 있어 오랜만에 가족산행이다. 


어느 산이 좋을지 남편과 의논했다. “북쪽 어때?” 남편이 얘기하는 북쪽은 내 초등학교 친구 윤정이가 살고 있는 철원을 말했다. 윤정이가 결혼해서 철원에 자리 잡고 나서 우리 부부가 자주 놀러 갔었다. 겨울이 되면 두루미와 독수리가 왔다고 연락이 왔고 여름이면 폭포가 멋있다고 불렀다. 철원 토박이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윤정이의 남편은 우리 부부를 태우고 겨울 들판 사이를 돌며 두루미가 많이 있는 곳을 보여주었다. 계곡을 구경한 후에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의 매운탕집을 데려갔다. 윤정이의 두 아들과 우리 아들이 어릴 때까지는 가끔 봤었는데 아이들이 크면서는 잘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가족여행으로 추억이 가득한 철원을 떠올리고는 컴퓨터를 켜서 철원 지도를 살폈다. 남편이 철원에 산 이름을 찾으면 나는 주방 벽에 붙여 놓은 지도에서 그 산들을 표시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금학산을 가기로 했다. 숙소는 고석정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고석정은 강이 침식되어 생긴 기암절벽 협곡이다. 배를 타고 협곡을 지나가며 볼 수도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임꺽정 동상 주변을 산책했다. 저녁시간이 되어 뭘 먹을까 얘기했다. 남편은 임꺽정 광장에서 예전에 갔던 식당을 가고 싶어 했다. 6학년이 되면서 키가 아빠만큼 커진 아들은 호텔 로비 식당에서 파는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좀처럼 자기 먹고 싶은 걸 얘기하지 않는 남편이 아들에게 여기까지 와서 무슨 피자를 먹냐고 했다. 아이들 먹자는 걸 먹는 남편의 드문 모습이다. 나는 고석정을 내려다보면서 테라스에서 하는 바비큐를 먹고 싶었으나 남편이 먼저 뭐 먹고 싶다고 한 것이 드문 일이라 남편 따라 밖에 식당에서 먹는 것에 한 표를 더했다. 식당을 찾아가는데 아들이 입을 쭉 나와있다. 아들은 어디 가는 것이 귀찮고 싫다. 빨리 숙소에 가고 싶다. 남편이 가고 싶던 식당에 불이 꺼져있다. 돌아보니 광장에 식당들이 대부분 불이 꺼있었다. 남편은 예전에 왔을 때 기억이 좋았다며 아쉬워했다. 숙소에서 식사를 하자고 돌아가는데도 아들 기분이 계속 별로다. 그 와중에 딸은 호텔에서 먹을 간식을 사자고 들어간 편의점에서 인형을 사달라고 떼를 써 정신을 쏙 빼놨다. 여행지에서 산책이 시끄럽고 정신없게 끝났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매의 가족 여행은 이런 거지 뭐. 1층 테라스의 바비큐는 사전 예약이 모두 끝나 있었다. 결국 피자와 돈가스가 우리 저녁식사가 되었으나 먹고 싶다 했던 아들은 계속 뚱 해서 먹었다. 


출발할 때 철원지역 강수확률이 80%였다. 산에 못 가면 철원 여행이라도 하자며 왔는데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길에 움푹 파인 곳들이다 물웅덩가 된 것을 보니 비가 밤에 왔나 보았다. 금학산 가는 차 창에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졌다. 등산로 입구에서 감자탕으로 아침을 먹고 나오니 다시 그쳐있다. 차를 타고 하늘을 살피며 금학산 방향으로 가는데 논 사이에 낯익은 아파트가 보였다. 윤정이가 사는 아파트였다. "몰랐어?"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지!" 내비게이션이 철원 여중 뒤 오르막으로 안내한다. 중학교 위로 큰 카페가 있어 거기에 주차를 했다. 카페의 야외 데크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다. 남편은 왜 바로 산으로 오르지 않느냐고 재촉하는데 하늘을 좀 더 살피며 윤정이에게 전화를 했다. 

“금학산이다”

“왔어? 같이 올라가자!” 

마침 오후 출근이라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만난 지 오래되었는데 갑자기 전화해도 어제 만난듯했다. 어릴 때 만난 친구란 그런 것인가. 차 마시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진다. '땅!'하고 내 안에서 출발 신호가 들린다. 금학산을 자주 오른다는 윤정이가 오르막이 계속된다고 알려줘 남편과 딸은 카페 위에 유아숲까지만 가기로 했다. 엄마 따라온 윤정이의 5학년 둘째 아들도 포켓몬 고수인 남편과 같이 움직이며 포켓몬을 잡기로 했다. 카페 옆으로 이어진 콘크리트 오르막길로 들어서니 바닥에 온통 버찌다. 잘 익은 버찌를 따먹는데 대부분 떫고 가끔 달았다. <유아숲체험> 표지판이 나왔다. 표지판 뒤로 내리막길 끝에 정글짐과 그물 다리가 보였다. 여기서 갈라졌다. 윤정이와 나와 내 아들만 등산을 찾아 더 올라갔다. 등산로 입구 앞의 공터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나 근무라 4시 반엔 내려와야 해. 매바위까지 갈 수 있겠다” 

"오케이. 알았어" 

깔끔한 나무 데크 계단을 지나자 매끈한 야자매트가 울퉁불퉁한 바위를 덮고 있다. 잘 정비된 길이다. 그다음엔 야자매트가 부족했는지 다양한 모양의 바위를 밟으며 갔다. 갈림길이 나오자 윤정이가 한쪽은 소방도로로 빠지는 길이라고 알려줬다. 자주 왔었는지 길을 훤히 잘 알고 있다. 

“이쪽으로 가면 포장된 도로만 걸어서 정상까지 갈 수 있어. 저번에 비 오는 날 남편이랑 이 길로 정상까지 올라갔었어.”

“우리도 그리 걸을까?”

“이런 날은 덥지.”

아직은 구름이 적당히 있어 선선하고 산에 오르기 좋지만 곧 더워질 수 도 있었다. 산길로 계속 가기로 했다. 땅이 젖어 있었지만 오를만했다. 아들은 어제 산책길에 이어 오늘도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어느새 아이가 크고 등산 경험도 많아져서 어르고 달래며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이어폰 낀 아들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들은 이제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 들으며 스스로 달래며 산을 올랐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와 근황을 나누며 걸었다. 길이 좁은 곳은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에서 가깝게 정체되면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정이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엄마들을 위한 수영반이 생겨 시작했다면서 엄마들 반 이름이 “인어공주”라고 해서 같이 깔깔대며 웃었다. 별명이 바다코끼리로 지어진 수영 코치 얘기도 해줬다.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아 취업준비할 때 같이 수영 다녔던 얘기 하며 오르니 잠시 힘들 걸 잊고 올를 수 있었다.  


드디어 셋이 서 있을 만한 곳이 나왔다.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었다. 잠깐 쉬고는 아들이 먼저 출발했다. 그런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윤정이가 “아들 진짜 착하다”라고 했다. 뭐라고? 남의 아들은 다 착할 때만 만난다. 어제저녁 먹는 동안 입이 내내 나와있던 아들이 떠올라 착하지 않다고 정색할 뻔했다. 그러나 친구는 어제의 아들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아들을 보며 말하고 있으니 어제의 일은 들출 필요가 없었다. 윤정이의 첫째 아들은 이제 산에 따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아들이 산에 함께 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엄마, 우리 왜 이리 늦게 올라가? 지금 내려올 시간 아니야?”

“오전에 비 왔잖아.”

“아, 맞다.” 


아들이 땀이 많이 나는지 손수건을 찾는다. 이전 산행에서 물이 부족하길래 이번엔 물은 많이 챙겼는데 손수건은 안 챙겼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완한다 해도 늘 새로운 문제가 나온다. 아마 모든 문제를 다 대비해 다니면 배낭이 무게가 문제리라. 손수건 대신 옷소매로 땀을 닦아가며 간식을 나눠 먹었다. 아직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금방 매바위 표지판이 나타났다. 출근하는 친구 따라 우리도 이만큼에서 그만 하산하자고 하니 아들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진다. 아들과 윤정이는 내리막 길을 뛰어갔다. 가파르고 바위가 뾰족해서 나는 스틱으로 콕콕 찍어가며 뒤따라갔다. 간격이 점점 더 벌어졌다. 여러모로 대화가 힘든 산이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윤정이의 둘째 아들은 남편에게 포켓몬을 많이 잡았는지 만족한 표정이었다. 딸도 유아숲에서 조금 놀고는 아빠와 차에서 영상을 보았다며 즐거워했다. 아이코 이러려고 둘째를 데리고 산에 온 게 아닌데. 아이 둘을 데리고 산에 가는 건 아직 무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볍게 걸어도 등산은 등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