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일 년에 몇 번씩이나, 길게는 몇 달씩 여행을 갔지만
그것들은 분명 여행이 아닌 일이었다. 눈뜨면 어디로 가야 할지 찾느라 바빴고 저녁이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전사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와서 기절하듯 침대에 곤두박질치고는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여행인 것이다.
일이 아니라 진짜 여행
멍하니 카페에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조금은 심심하지만 압박감이 없는 그런 여행
이번 여행은 첫 번째 숙소를 제외하고는 예약도 없이 온 한 달 여행이다
그리고 발리.
결정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는 발리다.
꼭 해야 하는 버킷리스트들은 이미 수년에 걸쳐서 다해치웠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다음 끼니 어디서 뭘 먹을까에 대한 고민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좋은 곳까지 가서 왜 와룽만 다니나, 카페만 다니나, 숙소에 드러누워만 있나 싶겠지만
그냥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딱히 와서 하는 것도 없지만
딱히 와서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딱히 와서 가고 싶은 곳도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오고 싶고 갈증이 나는 발리..
이 정도면 병이지 싶다.
내 생일이 있는 6월, 발리가 일 년 중 제일 예쁜 매일을 보여주는 6월
매년 6월만큼은 꼭 발리에 오고 싶다.
이왕이면 길게, 작년도 올해도 감사하게도 한 달이니
이 시간을 값지게, 최대한 느긋하게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