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피하는 법

없으면 그냥 버텨보자.

여기에는 수영장이 두 개 있다. 6층과 88층. 오늘 그녀들의 선택은 88층이다.


88층 수영장은 배려가 없다.

꼭대기라 그늘도 없고, 두어 개 비치할만한데, 파라솔도 없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개미떼가 출몰하고, 오늘은 뜨거운 태양이다.


아 뜨거워!!

수영을 하지 않는 나는 오늘 같은 날은 33도의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가늘게 뜬 채 최소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어야 한다. 이쯤 되면 삼둥이 엄마는 극한 직업이 아닐까 싶다.


그녀들에게 너무 뜨겁다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보지만 그러게 같이 수영하지 그랬냐는 반응뿐이다. 맞는 말이다. ㅎ 그래서 할 수 없이 내 선택의 책임을 지고 있다.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은 아이들의 견문을 넓히는 일이라고 들 말한다. 물론 나의 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어제는 중국인 엄마를 만났다. 북경에서 왔다고 했다. 영어 그리고 나의 미숙한 중국어가 더해졌다. 그러다 그녀가 말했다.


“한국어로 하셔도 돼요.”


오잉?

알고 보니 그녀는 삼성에서 10년을 근무했고, 그중 1년은 한국 수원에서 일했다고 했다.


오늘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우리의 대화는 규칙을 잃었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생각나는 순서대로, 필요할 때마다 섞였다. 이렇게 묘하게 3개 국어를 섞어서 대화를 해 본 일은 처음인 거 같다. 뭔가 좀 웃겼다.


중국어를 배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배운 언어가 나를 다른 사람과 연결해 주는 경험을 하는 것은 꽤 즐겁다.


아직 수영장에 온 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한 시간 남아 있다. 태양은 여전히 강하고, 가끔 구름이 태양을 잠시 가려주기도 한다. 아주 잠시라도 살 것 같다.

지금 나는 조금이라도 태양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수건을 둘렀다. 그리고 그새 온몸은 땀범벅…


이제 남은 건

버티는 일뿐이다.


작가의 이전글9 to 4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