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기도, 대답하기도 정말 진이 빠지는 일이다.
서론
사회적기업가 MBA에 입학하고 두 학기를 고민했다. 나는 사회적기업가인가. 만약 아니라면 나는 사회적기업가가 될 수 있는가. 사회적기업가적 역량이 후천적으로, 혹은 인위적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걸까. 여러 가지 고민들은 수업 중에 선배 기업가들의 창업 과정이나 성공 및 실패의 간접 경험 속에서 계속됐고 한동안은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이루게 할 만큼 괴로운 무언가 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표류하던 중요 단어들과 고민들을 간단히 정리해보고 싶었다.
고민의 시작: 내가 사회적기업가(혹은 그것이 되고 싶은 사람) 인지 고민해야 할 필요성
사회적기업 진흥원에서 인증하는 사회적기업에 선정되려면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그 과정을 겪어본 선배들에 의하면 쉽지 않은 작업이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고 한다. 조금 귀찮은 작업이지만, 해 내면, 이 것 저 것 지원도 많이 받고, 얻을 수 있는 혜택도 크단다.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진흥원을 설득해야 한다. 스스로를 사회적기업가라고.
그런데 아직까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을 생각이 별로 없고, 누군가에게 굳이 소셜벤처를 운영한다고 불리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다. 그럼 왜 이 고민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봄 학기에 여러 가지 과목을 공부하면서, 애초에 소셜벤처를 하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그 목적에 부합하는 대상들을 상대로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들어왔으니 보편적으로 내 비즈니스가 창출해 낼 소셜 임팩트를 증명해 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카이스트의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은 그것을 원했다. 그러니까 왜 내가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적'임을 증명해야 하지? 고민의 필요성,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 험난하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질문 속에 나를 던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은가?
‘내가 사회적기업가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가’와는 매우 다른 맥락의 질문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욕구에 관한 질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 말고도 사회적인 임팩트로 증명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다. 그냥 돈만 벌고 싶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럼 내가 사회적기업가인지, 아직 아니라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은 거기에 있겠다.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고 스스로 그것인지 물어 가는 과정,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증명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많이 성장하고 배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사회적기업은 무엇인가
기업이란 여러 가지 법률행위나 계약행위를 할 수 있는 법인격체이지만 사실 실체가 없다. 그러면 기업 자체보다는 의사결정을 하는 실재 ‘기업가’에 방점을 찍는 것이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시작으로서 더 바람직해 보인다. 사회적기업의 정의를 묻는 것은 사회적기업가의 정의를 묻는 것의 안긴 질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렇다면 다시 사회적기업가의 정의를 고민해야 하고, 또다시 사회적기업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논리는 쳇바퀴를 계속 돌고 결국 반복되는 질문의 세계 속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더 작은 질문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업이라는 말이야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한 합의된 개념이 있지만 사회적이라는 말은 다분히 모호하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또 한 번 도망가서, 무책임하지만 결국 주관성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그 주관성을 최대한 다양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의 정의
주관적으로 사회적기업을 정의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위의 질문들을 거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제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이 뭔지 말할 테니, 당신의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러려니 해라. 어차피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의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와 같은 항변이다.
‘사회적’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양성’의 존중이다, 곧 상대주의다. 모든 개념에 상하의 관계를 부정하며 수평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대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이라는 말은 개인적이라는 말과 다르게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모든 관계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옳다.
사회적기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적 문제’는 구성원 서로 간의 관계의 정의가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관계가 흐트러져 있으며 상하가 있고 갑을이 있는 상태다. 선입견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있는 집단은 사회적 문제를 많이 갖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사회적 문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국가를 이루는 많은 유기체들 간의 관계가 졸속으로 이루어져, 의사소통이나 합의의 과정, 혹은 서로를 존중하려 하는 과정이 무시되었거나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상태로 타인에 의해 국가의 시스템이 결정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존중이라는 것은 객체를 이해하려는 지극히 감정적인 접근이며 다 이해하면 끝나는 결과적인 개념이 아닌(어차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결과물들이 나오는 과정적 개념이다. 이 개념으로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사회적기업가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탐구하며 모든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적 시스템을 구현하려 기업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사회적기업가라고(혹은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사회적기업가라고 인정할 것이다.
나는 예술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고, 특히 공연예술 분야에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거나 하고 싶을 일을 하는 예술인들이 선입견 등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을 비즈니스로 풀어내고 싶다. 나는 뮤지션, 창작자, 연기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나 그들, 혹은 내 비즈니스와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성 있는 나의 사업 동기를 찾는다.
작은 결론
0. 나는 사회적기업가이다.
1. 앞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사회적기업가라고 주장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설득할 것이다. 이 설득은 단순히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을 말하는 의미 외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인위적으로 그 사람이 내가 사회적기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불편한 관계를 지양한다.
2. 난 앞으로 자신들이 사회적기업가라고 주장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역지사지로 고민해볼 것이다.
3. 기업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면 그들의 의견을 또한 들어보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