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오, 감사한 하루!

푹 쉬었다

by 카멜레온

이혼가정의 자녀가 되면 좋은 점이 몇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명절에 엄마쪽도 아빠쪽도 신경 안써도 된다는거다. 물론 우리집만 그런 것 같지만, 나는 양쪽 다 신경안쓰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오, 감사한 하루]


1. 산 같던 아빠가 늙어가면서 사랑스러워지는게 감사합니다.

- 우리 아빠는 엄청 친구같고, 나와 코드도 잘 통해서 아빠가 무섭다고 느껴진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키도 굉장히 크시고, 덩치도 엄청 커서 어릴 적에는 이왕표 닮았다는 소리도 들으셨다. 다른 의미로 산 같던 아빠가 이제 환갑을 넘기면서 점점 사랑스러워진다. 명절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용돈 달라는 애교도 부리시고, 용돈 드리니 고맙다며 신난 목소리로 전화를 하신다. 아빠가 늙어가는게 누군가는 서글프다는데, 나는 아직까진 사랑스럽다.


2. 엄마의 노후를 10년 빨리 준비해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 우리 엄마는 69년생으로 굉장히 젊은 엄마이다. 내가 34살이니깐...! 그런 엄마가 최근 오랫동안 실장으로 지냈던 김밥집을 인수하게 되었다. 비용은 어마어마하지만, 엄마의 꿈이기에 투덜거리며 응원중이다. 다행히 나에겐 큰 돈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이 있었고 이를 전부 드렸다. 다행히 나는 아직 결혼도, 자녀도 없기에 큰 부담도 없었고, 오직 나를 위한 돈이었기에 아무 이유없이 그냥 다 드렸다. 물론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엄마의 노후를 10년 빨리, 내가 조금은 자유로운 시기에 준비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3. 혼자있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 누군가는 혼자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몰라 낭비하곤한다. 나 또한 그랬고, 누군가는 오늘 내가 혼자 보낸 시간을 보고 낭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먹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건 나에겐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관점을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반성하면서 성장한다. 나는 반성 전문가이다.


4. 주차 걱정 없는 빌라에 살아서 감사합니다.

- 우리 빌라 거주자들은 이상하게 차가 없다. 주차 자리가 무조건 두곳 이상은 항상 비어있는데, 다른 빌라 거주자들이 매우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언제 퇴근을 해도 항상 자리가 있어 감사하다. 내 고향 동네 부곡동을 가면 주차자리를 찾는데 5분은 걸린다.


5.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감사합니다.

- 오늘은 영하 17도의 굉장히 추운 날씨였다. 1분만 야외에 있어도 얼굴과 손이 찢어질 것 같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엄청 추운 날이었다. 근데, 3개월 후엔 아마 봄 날씨가 살랑거리며 여름옷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6개월 후엔 너무 더워서 하루에 커피를 세잔 이상 마시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9개월 후엔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반은 필리핀에서 보냈는데, 거긴 365일 푸르다. 덥다. 똑같다. 한국은 강제로 삶의 변화를 줘야하는, 아주 감사한 4계절을 가진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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