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씨앗이 어머니 밭에 심어져 싹트고 꽃 피고 자라서 아들딸이란 열매를 맺습니다. 부모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온 게 자식입니다. 형, 누나, 오빠, 동생의 공동 무의식 속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자리 잡습니다. 자식이 떨어져 나간 부모 몸의 한쪽은 늘 시립니다. 몸은 서로 떨어져 따로 숨 쉬지만, 한 마음으로 희로애락을 나누는 게 부모자식관계입니다.
30년 넘게 중풍을 앓던 아버지를 하루처럼 수발해 온 어머니, 어느 날 침대에서 방바닥에 떨어진 아버지를 부축하다가 입은 허리 골절상으로 중환자실로 들어갑니다. 병원에서 합병증까지 얻은 어머닌 그 길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 퇴원 때까지만 계시라고 요양원에 모신 아버지, 충격받을 것을 염려한 자식들은 사실을 아버지께는 숨긴 채 3년을 쉬쉬합니다. 그동안 아버진 치매 중기를 넘어갑니다. 3주기 어머니 기일을 며칠 앞두고 도저히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로 향합니다.
30여 분을 차로 달려 도착한 가족묘지. 들어가는 길 가에는 오월 초입의 때 이른 따가운 햇살을 받아 보기 좋게 자란 진초록 풀과 형형색색 꽃들이 이부자리처럼 깔려 있습니다. 마치 어서 오라고 기다리던 주인의 마음인 양, 때 맞춰 부는 한줄기 소슬바람이 잔뜩 오그라든 형제들의 심장을 잠깐 식혀 줍니다. 요양원에서 산소까지 오는 길에 형제들한테 달려든 오만가지 생각의 연결고리. 아버지가 지을 표정, 몸의 반응과 움직임을 어떻게 받아낼지 형제는 초긴장하며 아버지를 살핍니다. 일부러 어머니 비석 가까이로는 가지 않았지만, 멀리 상석 앞에서 묘지의 비석들을 두루 훑다가 아버지 눈길이 비석 하나에 멈춥니다.
‘아니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누워 있는가? 60년 고락을 함께해 온 내 동반자. 이런 줄도 모르고, 여기 숨 쉬고 밥 먹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잠깐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마른 입맛을 다십니다. '그래도 표시는 하지 말아야지. 자식들한테 내 못난 모습 보일 수야 없지.’ 심장이 후벼 파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찔해 오는 전율을 견딜 수 없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떱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머니 상석 앞에 절을 하고 난 형제는 여든 중반의 반 치매 아버지가 하는 세상의 어떤 배우도 소화할 수 없는 각본 없는 연기를 마주합니다.
"왜 남의 산소에 와서 절을 하느냐,
부대에 신고도 안 하고 나왔는데 빨리 돌아가자"
강직하기로도, 자존감 높기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자식을 향한 무한 배려심 앞에 형제들은 또 한 번 머리를 숙입니다. 아버지 스스로 요양원을 군부대라 여기고 지내셨던 것입니다. 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아버지입니다. 오른쪽 뺨에 총탄이 스친 자국이 선명하게 사선을 몇 번 넘다가 퇴역하셨다고 합니다. 자식들에 떠밀려 엉겁결에 요양원에 들어와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생각했을 것입니다. ‘늙고 병든 사람이 와야 할 곳에 내가 왔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편하게 생각하자. 전쟁 때 죽다가 살아난 몸, 아까울 게 뭐가 있나.’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여든의 노병 아버지는 다시 군에 입대하고 맙니다.
어떻게 꿈에라도 생각해 보셨을까요, 당신이 복지 시설에 들어와 관리 번호 하나의 존재로 떨어지리라고. 당신 아내는 이미 흙이 되어 버렸고. 아버지의 수많은 감정이 뒤섞이면서 검게 타버립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를 '멜랑콜리'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아버지 가슴속을 갈라 보면 아마 이 상태가 아니었을까요. 놀랍게도 아버지는 멜랑콜리에서 자식 사랑의 밝은 빛 몇 줄기를 가려내어 하늘에 쏘아 올립니다. 오월은 그래서 푸르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