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벗고 다시 낯선 아이로

세 번의 어른이 가르쳐 준 대로

by 여상욱

옴쭉달싹 못하게 밀고 들어온 자본주의 권력이 물질문명 사회의 층위를 극단까지 끌어올립니다. 4차산업혁명의 발톱이 할퀴고 간 자국이 몸뚱이 여기저기에 선명합니다. 삶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쉰 살 무렵부터 디지털, 온라인, 비대면, 가상현실, 메타버스, 빅데이터, 알고리즘 체제의 파편을 이곳저곳에 두들겨 맞은 흔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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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가 배 곯던 시절, 후기 농경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스무살이 되면서 법이 정해놓은 어른, 결혼하면서 가족을 형성하고 거느린 어른, 다 큰 아이들 출가시키며 시아버지와 사돈 자리에 앉은 어른. 세 번의 의식을 거쳤으니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거실 벽에 붙은 사진 속에서 할아버지를 부르는 듯한 손자의 몸짓을 보니, 아직 내 속에 남아있는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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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던 때, 교실 게시판에 ‘장백산맥’이란 제목으로 내가 쓴 시가 나붙은 적이 있습니다. 바뀌는 과목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초등학생때부터, 취미는 독서와 글짓기, 특기는 사색이라고 환경조사서 칸을 메웠습니다. 사색이란 말의 뜻을 알고 적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날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칸에 채워진 낱말 몇 개는 열 살 짜리 아이가 그려 낸 ‘나’라는 사람의 골격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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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펼친 하얀 도화지에 어른의 고집과 편견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아이가 고른 색깔을 칠한다 해도 명도와 채도가 낮은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은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 권위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 성공과 출세를 찾아 다니다가 행복을 쫓아내는 사람, 남의 시선에 나를 맞추는 사람, 일상의 루틴에 빠져 나를 잃어버린 사람 아닙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허둥대며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뒤집어 쓴 가면. 그 가면이 '나는 당신 자신이 아니고 굴레일 뿐이니 짧은 삶의 무대에서 연기만 하며 살지 말라'는 목소리를 낼 때도 있었어요. 가끔 '진짜 나'를 만나는 기회도 있기도 했네요. 다람쥐 쳇바퀴 삶의 틈바구니를 헤쳐 나오지 못하고 은퇴라는 서슬퍼런 자본주의 철퇴를 맞고서야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은퇴는 철퇴이면서 또한 기계 인간이 우글대는 사회의 어른들이 고정관념으로 쌓아올린 높다란 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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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을 다녔던 회사를 나오고 직장 때문에 부득이 살았던 도회지를 벗어나 지금 살고 있는 강변 마을.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집 마당. 건물이 깔고앉은 부분을 빼고 남은 면적 만큼의 뜰. 건물과 뜰을 합한 넓이 만큼의 하늘이 내 차지가 되니 마음은 몇 배 더 넓어집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더미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흙과 강과 숲과 하늘을 벗삼다 보니,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절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짓눌려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저만치서 걸어나옵니다.


그 아이 손을 붙잡고 다행히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른의 굳은살 속에 가렸던 속살이 만져지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잊어버렸던 어린아이적 내가 틀림없습니다. 강변의 아담한 마을에 둥지를 새롭게 튼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른을 벗어버리고 자연과 아이를 입고 새뜻한 흙 속에 꺽꽂이되어 새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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