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만족은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회사를 퇴직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책장 정리를 하다가 손때 묻은 메모장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소송 변론 요지와 피고의 특별한 사정을 적어 놓은 노트였어요. 첫 장을 넘기는데 사건번호, 피고 이름 아래에 또렷하게 적힌 '암 투병'이란 문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라 금방 스토리가 떠올랐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10년간 채권소송 업무를 담당했을 때로 돌아갑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장기간 사용료를 납부하지 않거나 습관적으로 체납하는 채무자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하여 재판을 받거나 화해 절차로 채권을 회수하는 일입니다. 고객은 상황에 따라 단순 채무자가 되기도 하고, 법정의 피고석에 앉을 수도 있었지요.
그날은 소송 변론 차 법원을 다녀와서 정리할 일이 많아 퇴근이 꽤 늦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막 사무실을 나서는데 책상 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힘이 겨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 를 찾는 전화가 틀림없었습니다.
"돈을 구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법원에서 만난 직원분의 따뜻한 배려가 고마웠고, 약속의 중요성도 깨달았어요. 그래서 밀린 요금을 납부하려고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말한 고객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딸 둘과 정부지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장암이라는 병마까지 겹쳐 하루하루가 힘들었고요. 그러나 소송으로 법원까지 다녀온 후 세상에 진 빚은 갚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약속대로 고객은 다음날 밀린요금 전액을 납부하였습니다.
생활이 곤궁한 데다 중병을 앓고 있는 고객이 어렵게 돈을 장만하여 요금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나는 고객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몇 마디 따뜻한 말을 건넸던 게 전부였습니다. 물론 소송은 바로 취하를 했지만요.
직원은 비대면으로 채권 관리를 하는 업무 특성상 고객을 목소리로 만납니다. 고객 한명 한명은 각기 다른 사정을 갖고 있으나 회사의 응대 매뉴얼은 천편일률적입니다. 고객은 열 가지, 백 가지 사연으로 채무자가 되어 법원까지 불려가서 회사와 불편한 자리에서 마주앉습니다. 매뉴얼 몇 페이지, 응대 멘트 몇 줄, 소송이라는 압박 수단으로 고객의 다양한 사정을 헤아려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 고객은 회사 규정을 알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으며, 업무 절차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왜,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매뉴얼에 고객을 맞추는 대신 고객의 사정을 귀 기울여 듣고, 그에 맞춰 매뉴얼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법으로 고객에게 다가갔습니다. 내비게이터처럼 고객을 대한다면 만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나만의 업무 철학으로 고객이 요금을 납부할 수 없는 사정과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고, 형편이 될 때까지 기다릴 테니 납부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며 시간을 주었습니다. 고객을 믿고 기다리던 나는 그날 믿음의 대가를 보상받은 것입니다.
너무 튼튼한 시스템에 얽매이다 보면 자칫 고객 이전에 인간에 대한 이해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기계화된 응대 멘트와 매뉴얼로는 개별 고객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회사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회사 내부용 프로세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책상머리나 지키는 응대 프로그램을 넘어서 현장에서 고객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맞춤형 솔루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대하는 마인드를 갖출 때 고객 이전에 인간관계의 기본이 섭니다. 이 틀에서 직원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응대 직원 각자가 회사의 지향점을 고객 눈높이에 맞출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업무관을 갖춘 직원 한명 한명이 회사의 구성원이 될 때 고객 만족이라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