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분기가 지나고 나면 전년도 경제 성장률이 발표된다. 계획을 달성하면 정부는 자랑스럽게 발표하고, 언론은 축하 기사를 쏟아낸다. 주식시장엔 붉은 기둥이 치솟고, 기업들은 더 큰 성장을 약속한다. 하지만, 지구촌 어디서는 원시림이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느라 벌목되고,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이고, 북극 빙하는 녹아들어 곰들의 서식지가 줄어든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나라의 근본적 부조리가 아닐까? 무한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 정책과 유한한 지구 사이의 모순.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과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연 환경 사이의 충돌.
매년 우리는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을 맞는다. 올해는 7월 24일이었다. 이 날 이후 연말까지 인류는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마치 은행 계좌에서 원금을 까먹으며 사는 것처럼.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률이 낮다"며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고, 더 많은 생산을 계획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지대로 가보자.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매년 서울 면적의 수십 배씩 사라진다고 한다. 왜일까? 소를 키우는 목초지를 넓히고, 콩을 재배하고, 팜유 농장을 조성하기 위하여 울창한 숲을 파헤친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전 세계는 "환경 보호가 우선"이라고 질타한다.
이 현상이 브라질에서만 일어날까? 목초지에서 키운 소가 우리 식탁에 햄버거로 오르고, 재배한 콩이 우리가 기르는 돼지와 닭의 사료가 되며, 팜유가 우리가 쓰는 화장품과 라면의 원료가 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아마존 자연을 파괴하는 공범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도 먹는 햄버거 양을 줄이지 않는다.
우리의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떨까? "동북아 경제 허브 건설"이라는 그럴 듯한 구호를 외쳤지만 결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갯벌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수십만 마리 철새들이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가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곳에 약속했던 경제 중심지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녹조와 악취만 남았다. 그래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역설적인 것은 환경 보호까지 경제 논리가 동원된다는 점이다. "친환경은 미래 성장 동력입니다." "그린 뉴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습니다." 환경을 살리겠다는 정책도 결국 성장과 이익이라는 잣대로 정당화된다. 자연 그 자체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다.
전기차를 예로 들어보자. 환경을 생각해서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과 코발트를 채취하기 위해 남미와 아프리카의 광산에서는 지하수가 고갈되고 토양이 오염된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석탄을 태워야 한다.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소비를 정당화하는 구실일까?
재활용도 마찬가지다. "분리수거만 잘하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린다. 하지만 재활용률은 생각보다 낮고, 재활용 과정에서도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진짜 환경 보호는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인데, 그것은 성장 논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들 모순의 뿌리에는 '성장 신화'가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강박, 작년보다 올해가 더 좋아야 한다는 믿음, 더 많이 가져야 더 행복하다는 착각. 하지만 암세포도 성장한다. 끊임없이, 무차별적으로, 숙주가 죽을 때까지.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탈성장'이라는 개념이 유럽에서부터 싹트고 있다. 무작정 성장 말고 '충분히'를 쫓는 사회, 더 많이 갖기보다 더 잘 사기를 선호하는 경제.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투자가 줄고, 경쟁에 뒤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은 여전히 두텁게 우리 뇌를 누르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성장 모델이 아니라 성장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일지도 모른다. 더 큰 집, 더 비싼 차, 더 많은 물건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생각하며, 조금은 덜 가져도 괜찮다는 용기를 내는 것.
지구는 우리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서 빌린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것을. 그런데 지금 우리가 물려주려는 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성장의 핑계로 만들어낸 쓰레기 더미일까, 아니면 여전히 푸르른 행성일까?
답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