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테이션] 나는 내가 장학금 탈 줄 알았지.

대학 때도 F는 없었는데..

by 상처입은 치유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로 했을 때, 우리는 딸 아들 구분 없이 '선착순 1명'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을 가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이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아이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품은 9개월, 그중 7개월 동안 지속된 숙취 같은 입덧에도 내 몸과 마음은 그때만큼 즐거운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상담 전공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지원했다가 똑 떨어졌다. 하지만 내 상담 공부는 합격증 대신 '나와의 조우'를 선물해 줬다. 아이를 갖기 전에 나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 아이에겐 절대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나는 자칭 '보급형 오은영 박사'였다. 자칭이 중요하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의 착각이라고 해두자. 부끄러우니까.


심지어 사람들에게 육아 조언도 해줬다. 지금 생각하니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모든 모공을 타고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머리카락은 쭈뼛 선다. 그때 내가 조언했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야겠다.


십여 년을 함께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는 내가 어떤 과목이 부족한지 기똥차게 알아낸다는 것을. 세상에 이렇게 유능한 스승은 없다.


녀석은 나를 완벽한 엄마로 만들기 위해 나에게 철저하게 맞춘 교육과정을 설계해 놓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학개론서'를 들고 매일 수강신청을 했다. 아니..과제를 받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교수님.. 개론서라면서요? ㅜㅜ' 공부해 보니 이건... 우주 만물을 가르치겠다는 거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가 아니라 하버드 대학도 수석으로 합격했을 것 같다.


어떤 학기는 한두 과목으로 여유롭게 지나갔으나, 어떤 학기는 야간수업까지 꽉 채워도 도무지 교육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럴 땐 "에라이!" 하며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수강이지 않은가. 재수강엔 돈과 시간이 든다. 지금 해내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더 깐깐한 교수님이 가르칠지도 모른다. 계절학기도 피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나의 수강 과목에 대한 족보를 만들듯 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다음에 들어올 학생들을 위해서. 특히 나와 같은 과목에서 F학점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이 막막함과 창피함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


"나만 그런가..." 하고 주머니에 마음을 담아 입구를 꽁꽁 여며 깊은 곳에 숨겨놓았을 사람들을 위해.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라고 따듯한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집 희극과 비극의 서사에, 비장하지 않게 당신을 초대해 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