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기초-아동발달학] 우리의 울타리 리모델링

분주했던 공사현장

by 상처입은 치유자

그날 우리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눈을 마주쳤다. 짐짓 비장하기까지 하다. 내가 남편이 저녁으로 먹고 싶다던 갓 지은 밥과 김치찌개를 기쁘게 차려 낸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울타리를 세우려면 힘이 필요하니까.


아이가 저녁식탁 자리에서 부릉부릉 시동을 걸었다. 이 불안감.


얼마나 지났을까. 저녁 늦은 시각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방에서 들렸다. 누가 들어도 이건 우리 집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소리다.


'책이 벽에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군. 아! 이건 핸드폰이야. 깨져도 새로 해줄 일은 없지. 뭐 저 정도로 깨지진 않을 것 같고... 어!! 이건.. 의자다. 늦은 밤인데 의자 던지면 민폐지. 가서 경고해야겠다.'

귀로 들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출발이다.




아차차! 출발 전 준비운동이 있다. 이제 나는 권투선수 몸 풀듯 목도 좀 돌리고 얼굴도 '푸르르르~~'하며 이완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술을 먹여 기분 좋게 취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 취권이다. 약간 풀어졌다 생각할 때 방문을 연다.


"지금 밤이야. 조용히 해야 해! 이러면 남에게 피해 주는 거야"


버튼이 눌렸나보다. 지겨울 법도 한 레퍼토리를 순서만 바꿔 이야기한다.

"엄마자격 없어"

"뭐 엄마가 완벽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줘"


아이가 힘들었나보다. 또 모진말이다. 저 모진 말 속에 도대체 무엇이 숨어있을까.

"선 넘었어! 그건 하면 안 되는 말이야."

"엄마도 선 넘게 나 키웠는데 왜!"

나는 도대체 무슨 선을 넘었단 말인가!!!!


이젠 어디 저장해 놓고 카피 페이스트를 해야 하나 싶게 반복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왜 아이가 저 말을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냥, 아이가 그렇다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금 여기서부터 해결하자고 마음먹었다.


나이스 타이밍! 삐삐 삐삐삐. 덜컹. 아이의 동공이 흔들린다. 목소리는 잦아든다. 외출 후 아빠의 귀환.

'전두엽이 살아 있군. 다행이다. 최소한 자기가 하는 일이 모두에게 이해받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아는 모양이야.' 나의 한숨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명백하다. 나는 아이에게 맘 놓고 다리를 뻗을 자리였다. 재수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은 아이방으로 들어와 물어본다.

"00, 너 왜 그래? 의자는 또 왜 넘어져 있고? 네가 던졌어?"


나는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이르듯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그래서 작스런 상황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럼 아빠랑 시골로 가자. 대신 앵무새는 못 데려가. 아빠 비염 있고 난 앵무새가 싫어."

이리도 직설적이라니. 나는 '감정코칭'이라는 감시관이 시시 때때로 올라와 입을 막아서하지 못했던 말인데. 대리만족이다.


"엄마가 그렇게 싫은데 어떻게 엄마랑 살아? 떨어져 살아야지. 시골에 작은 학교 있어. 엄마 때문에 네가 공부 못하겠으면 공부도 하지 마. 이렇게 맘이 힘든데 공부를 어떻게 해?"

시골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남편은 육아에서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을 다 했다. 그래도 우리 남편 멋지다. 아.. 섹시해.


"공부하지 말란 말은 하지 마! 왜 포기하래 내가 하겠다는데!!"

아이가 말한다. 어쩌란 말인가.


"엄마가 걸림돌이어도 엄마는 네 옆에서 끝까지 지킬 거야. 그리고 오빠 애보고 여기 떠나가라고 하지 마. 난 우리 애 내 옆에 둘 거야"

이 말은 진심이다. 언젠가 떠날 아이와 벌써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이때 나는 신랑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거 해야 하는 말이야.'라고 이해하길 바라며. 이날만은 우리 남편도 눈치 백 단이되었다.


"그래서 뭐가 싫은 건데?" 남편이 묻는다.

"엄마는 맨날 무기력하고 어쩌고 키우는 방식이 어쩌고 저쩌고..."


우리 남편은 경찰이다. 가정폭력을 처리하는.

"너 지금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말하는 거야? 진짜 아동학대가 뭔지 모르는구나. 알려줘? 그리고 엄마가 매일 출퇴근에 밥 해주고 일하고 공부하니까 당연히 힘들지!"

헉! 이 사람. 나를 사랑하나 보다. 내편을 든다.


".... 아 몰라. 엄마가 날 잘 못 키웠어."

아이에게서 빠져온 기세가 우리에게 오는 것 같았다. 아이의 눈에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부모가 한 팀일 때 아이는 부모에게 소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든든한 울타리로 여기고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자기의 인생을 펼친다고 한다.




그날 밤,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엄마를 두둔해 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와 다른 고맙다는 말의 무게를 남편도 더 진지하게 느꼈던 것 같다.


"와~ 어떻게 앵무새 카드를 생각해 냈어?"

"나? 나 진심 앵무새 싫어하는데? 진짜 싫어."

역시 솔직함이 그의 매력이다.


왠지 모를 승리감에 취해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앞으로 있을 공사에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우리는 우리만의 울타리 공사 중이다. 지금까지 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울타리를 보수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재건축을 해야 하는 울타리도 발견되고.. 예상보다 예산이 더 들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다. 이곳은 아이가 춤추는 무대가 될 텐데. 끝까지 우리가족 맞춤형 완벽시공을 해야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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