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임상 Mar 12. 2024

알고리즘 너머의 음악

*요즘 한참 고민 중인, 미래의 예술경험을 위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는 글 두번째.




우리는 과거 사진의 등장이 회화에 던진 혁명적 영향에서 이 시대 음악이 나아갈 길을 가늠해볼 수 있다. 19세기 초 다게레오타입의 발명으로 시작된 사진술은 회화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화가들은 사진이라는 '기계 복제술'에 의해 자신들의 역할이 위협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사진이 회화를 위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적 지평을 확장시켰음을 보여준다. 사진이 사실적 재현의 영역을 담당하게 되자, 회화는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화 등 다양한 양식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예술 세계를 개척해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AI 음악 서비스의 등장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술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 고유의 창의력으로 끌어안는 혜안이다. 기계는 결코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없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인간 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그 두 글자는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특히 음악 산업에서 AI의 영향력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개인화된 음악 추천 서비스가 대중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알고리즘의 이면에는 음악 본연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AI 음악 서비스는 편의성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를 획일화된 음악의 울타리에 가두려 한다. 대다수의 선호에 최적화된 알고리즘은 대중성을 추구하는 나머지 다양성을 희생시킨다. 마치 융단 폭격처럼 쏟아지는 음악 속에서, 우리는 진정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음악이 지닌 본질적 의미, 즉 개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퇴색시킨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뮤지션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AI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지키는 데 있다. 창의력의 영역 말이다. 뮤지션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알고리즘이 선사하는 편의를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 그들의 진정성 어린 메시지와 삶의 경험이 녹아든 음악은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음반 기획사의 역할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 예술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기보다 음악성 높은 작품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평준화되고 획일화되는 음악 트렌드에 맞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뮤지션들을 적극 후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음반사는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 대중성이 높은 특정 장르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아우르는 포용력이 요구된다. 또한 메이저 레이블 중심의 시장에서 벗어나, 숨어있는 인디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음악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음악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음반사는 AI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단순히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음악 트렌드와 청자 니즈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음악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다. 또한 AI 작곡 도구 등을 활용해 창작 과정에서의 효율성을 높이되, 그것이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음반사는 뮤지션과 팬을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AI 음악 서비스의 비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뮤지션과 팬 간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그들 간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발성 음원 발매에 그치지 않고, 뮤지션의 음악 세계를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음악은 '인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급변하는 기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예술가의 정체성, 알고리즘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인간 감성의 결을 음악으로 그려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음악이 테크놀로지 시대에 담지해야 할 궁극의 가치일 것이다. 우리가 AI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속에서 인간 고유의 영역을 지켜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대중음악이 아닌 개인음악 시대의 도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