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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고 싶은 마음

by 류임상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인공지능으로 만든 음악 작품들을 심사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참여자 수에 한 번 놀랐고, 그들이 제출한 작품의 수준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화성 진행, 흠잡을 데 없는 음향 밸런스, 감정을 정확히 겨냥한 멜로디 라인들. 그 순간 저는 깊은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창의적'이라는 평가 기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AI가 만든 이 작품들 앞에서 '완성도'를 논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인간의 불완전한 손끝에서 태어난 삐뚤빼뚤한 선율과, 알고리즘이 직조한 완벽한 음의 구조물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창조'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심사 기준의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욕구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왜 만들고자 하는가? 그리고 AI 시대에 그 욕구는 어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가?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


인간의 창작 욕구는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근원적인 갈망입니다. 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할머니가 뜨개질을 하며, 청년이 일기를 쓰는 것 - 이 모든 행위는 "나는 여기 있었다"고 세상에 속삭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왜 만들까요? 아마도 마음속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어 형태를 주고 싶어서일 겁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현실에 나타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 더 알게 됩니다. 낙서든, 흥얼거림이든, 이야기 짓기든 - 창작은 우리가 세상과 대화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입니다.


창작은 내면의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적 과정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단순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넘어,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불안과 대면하는 가장 창조적인 방식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의미이며, 그 의미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놀이를 넘어선 창조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할 수 있지만, 현대의 디지털 게임 경험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창조적 참여로 진화했습니다. 마인크래프트에서 건축물을 세우는 행위는 놀이인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창조적 생산입니다.


인생이라는 게임과 일반적 게임의 차이는 바로 이 창조적 자유도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기획하고 창조합니다. 친구와의 관계를 직조하고, 가족의 서사를 구성하며, 직업적 정체성을 조각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실존적 창조 행위입니다.


작은 신이 되는 순간


창작의 순간, 우리는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에서 '세계-창조-존재'로 전환됩니다. 빈 캔버스 앞에서, 침묵하는 악기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과 대면합니다. 이 순간의 현기증은 자유의 현기증, 창조의 무게입니다.


창작할 때 우리는 잠시 작은 세계의 신이 됩니다. 빈 종이 위에 선을 긋고, 침묵 속에 음을 채우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죠.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내 손끝에서 시작됩니다. 이 경험이 특별한 이유는 일상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잠시 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지만, 적어도 이 작은 창작의 공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됩니다. 의미 없어 보이던 재료들이 내 손을 거쳐 의미를 얻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의미도 발견하게 됩니다.


AI 시대의 창조: 새로운 아우라의 탄생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아우라'를 상실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아우라를 창출합니다. 그것은 작품 자체가 아닌, 창조 행위 자체에 깃든 아우라입니다.


이전의 도구들은 여전히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카메라를 살 수는 있어도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AI는 다릅니다. 몇 마디 말로 즉시 작품이 나타납니다. 실패할 걱정도, 못 그릴 두려움도 없습니다. 창작의 기쁨만 남은 셈입니다.


AI가 제공하는 것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창조 경험의 민주화'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새로운 형태의 시작(詩作)이며, 큐레이션은 개념적 창조 행위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창작인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창조 충동 자체의 보편성과 그것이 인간 실존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인간 조건의 재정의


AI 시대의 창조는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로 재편됩니다. 인간-AI 협업은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 '되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일부로서 창조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불안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창작의 고유성이 사라진다는 두려움, 인간 고유의 영역이 침범당한다는 공포.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인간 창조성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AI가 완벽한 소나타를 작곡해도, 그것을 욕망하고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입니다.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 심사 자리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AI가 만든 완벽한 작품들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것은 그것을 만들고자 했던 인간의 욕구였다는 것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창조하고자 하는 충동 자체는 온전히 인간의 것입니다.


창작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려는 행위 입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자, 무의미에 대한 반란이며, 고독에 대한 응답입니다. AI 시대는 이러한 인간의 창조적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만들면서 존재하고, 존재하면서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 조건입니다. 기술은 변해도, 창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그 깊은 갈망은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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