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자의 윤리 - 타자의 얼굴 앞에서
권력으로서의 선택
지난 세 회에 걸쳐 우리는 큐레이터와 AI 음악 창작자의 작업을 탐구하고, 그 구조적 유사성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단순히 창작 방법론의 변화일 뿐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함의가 있을까요.
선택의 자유는 선택의 책임을 동반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은 무한한 윤리적 부담을 요구합니다. AI가 제약을 해체한 자리에, 창작자의 도덕적 자기결정만이 남습니다.
창작자는 권력을 가집니다. 타인의 경험을 설계하는 권력. 집단의 정서를 형성하는 권력. 문화의 미래를 만드는 권력. 이 권력은 책임을 수반합니다.
지각의 재구성
경험 설계자로서의 권력
큐레이터가 전시 공간에 작품을 배치하는 행위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관람객의 지각 구조를 재편하는 개입입니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적 지각 방식이 중단됩니다. 거리의 소음, 업무의 압박, 일상의 리듬—이 모든 것이 문 앞에서 멈춥니다. 전시장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의 시선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습니다. 큐레이터가 설계한 경로를 따라 움직입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볼 것인가, 어떤 순서로 경험할 것인가는 큐레이터가 결정합니다. 관람객은 자신이 통제한다고 느끼지만, 실은 큐레이터가 직조한 의미의 그물망 안에서 움직입니다.
이것은 권력입니다. 타인의 경험을 설계하는 권력. 타인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력. 이 권력은 물리적 강제가 아니라 의미론적 인도를 통해 작동하기에 더욱 섬세하고, 따라서 더욱 책임을 요구합니다.
AI 음악 창작자의 권력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그들은 청취자의 내적 시간을 조율합니다.
음악은 시간 예술입니다. 소리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음악을 구성한다는 것은 청취자가 경험할 시간의 질을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침묵을 어디에 배치하는가는 중요합니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론적 요소입니다. 침묵이 청취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거나, 불안을 조성하거나, 다음에 올 소리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음량의 변화는 청취자의 감정적 강도를 조작합니다. 점진적 크레센도는 긴장을 누적시키고, 갑작스러운 포르테는 충격을 줍니다. 창작자는 이 감정적 궤적을 미리 설계합니다.
리듬의 변화는 청취자의 신체적 반응을 유도합니다. 빠른 템포는 심박수를 높이고, 느린 템포는 호흡을 깊게 만듭니다. 음악은 청취자의 몸에 직접 작용합니다.
이 모든 선택이 청취자의 경험을 규정합니다. 창작자는 청취자가 아직 듣지 못한 미래의 소리를 예견하며 현재를 구성하고, 과거에 들었던 소리의 잔향이 현재를 어떻게 색칠할지를 계산합니다.
취약성 앞에서
레비나스는 윤리의 근원을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에서 찾았습니다.
타자의 얼굴은 나에게 명령합니다. "나를 죽이지 말라." 동시에 호소합니다. "나는 취약하다." 이 명령과 호소 앞에서 무관심할 수 없음—이것이 윤리의 시작입니다.
창작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수용자의 얼굴을 상상합니다.
이 음악을 들을 사람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까. 무엇이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혹은 이 전시를 볼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며 올까. 어떤 질문을 안고 있을까.
이 상상된 얼굴이 창작자에게 책임을 부과합니다. 자신의 선택이 그 취약한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숙고해야 할 책임을 생각합니다.
음악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음악은 청취자의 정서적 상태를 변형시킵니다.
어떤 멜로디는 우울한 사람을 더 깊은 우울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슬픈 음악이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절망을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리듬은 무기력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창작자는 이 변형의 힘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음악적 요소들이 청취자의 내면에 파동을 일으킬 것임을, 그 파동이 치유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큐레이터의 책임은 더욱 복잡합니다. 전시는 미적 경험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어떤 작가를 전시에 포함하고 어떤 작가를 제외하는가는 미적 결정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성의 정치입니다. 누구의 목소리를 증폭하고 누구를 침묵시키는가. 어떤 서사를 정당화하고 어떤 경험을 주변화하는가.
큐레이터의 선택은 문화적 정전 형성에 기여합니다. 그의 선택이 반복되고 축적되며, 무엇이 '좋은 예술'인지에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소수자, 비주류, 실험적 작가들—이들의 작품이 주요 전시에서 배제될 때, 그들의 예술적 시도는 정당성을 얻지 못합니다. 큐레이터는 이 배제의 구조를 재생산할 것인가, 아니면 도전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진정성의 윤리학
독창성에서 진정성으로
AI 시대에 예술가의 덕목이 변화합니다.
전통적으로 창작자의 가치는 독창성과 천재성에 있었습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타고난 재능과 오랜 수련을 통해 획득한 기술같은 것들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AI가 순식간에 수천 개의 독창적 변주를 생성하는 시대에, 독창성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습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리즘이 완벽한 기술적 실행을 보장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진정성입니다.
진정성이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깊은 자기인식입니다. 왜 이것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명확한 의식. 표면적 이유가 아니라 근본적 동기에 대한 성찰.
AI 음악 창작자가 특정 트랙을 선택할 때,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이것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핵심을 가장 정직하게 포착하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배치할 때도, 유행이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비전에 충실해야 합니다. 다른 전시들이 특정 작가를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작가의 작업이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
"내 선택이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이 선택이 나의 안전지대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불편합니다. 자신의 한계와 맹점을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권력 구조를 발견하는 것은 수치스럽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불편함이 윤리적 창작의 출발점입니다.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은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것이고, 현상 유지는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진정성 있는 창작자는 이 불편함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자신의 특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시각이 부분적임을 받아들이며, 다른 관점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합니다.
기술과 인간성의 긴장
AI는 놀라운 효율성을 제공합니다. 빠르고, 정확하고, 무한한 변주를 생성합니다.
하지만 창작자는 효율성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윤리적으로 정당한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AI는 어떤 이미지든, 어떤 음악이든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생성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작자는 이 간극을 인식하고, 후자를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완벽한 기술적 실행을 가진 트랙을 포기하고, 거칠지만 진정성 있는 트랙을 선택해야 합니다. 때로는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안전한 작품 대신, 불편하지만 필요한 작품을 전시해야 합니다.
예술의 본질은 인간 고통의 서사적 탐구와 공동체 연대의 강화에 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창작자는 기술을 활용하되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인간적 연민과 상상력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제도적 재구성
1. 편집 노동의 가치
AI 시대 창작 행위의 재정의는 실질적 정책적 함의를 가집니다.
첫째, 편집 노동 또는 큐레이션 비용에 대한 경제적 보상 체계가 필요합니다.
현행 저작권법은 원작 창조자에게 권리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적 노동이 출현합니다—선택과 배열의 노동.
AI가 생성한 수천 개의 결과물을 평가하고, 적합한 것을 선별하며, 편집하고 배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이 투입됩니다. 이것은 명백한 지적 노동입니다.
한국 저작권위원회의 <수로부인> 판결은 중요한 선례입니다. AI가 생성한 영상과 음악을 선별하고 배열한 행위를 편집 저작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과 배열 자체가 창작성을 가진다는 법적 인정입니다.
기존 편집 저작물 개념을 확장하여 이 큐레이션 노동의 가치를 명확히 인정하고 보상하는 법적 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창작자 보호 차원이 아니라, AI 시대 창작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2. 윤리 프레임워크
둘째, AI 생성물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학습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작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 저작권 상태, 사용 허가 여부—이러한 문제들이 법적 공백 상태에 있습니다.
책임 소재도 불명확합니다. AI가 기존 작품과 유사한 결과물을 생성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는가? 알고리즘 개발자인가, AI 사용자인가, 플랫폼 제공자인가?
명확한 윤리적 기준과 법적 책임 체계가 수립되어야 합니다.
또한 AI 생성물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합니다. 혐오 표현, 허위 정보, 편향 강화, 명예 훼손—AI는 잠재적으로 해로운 콘텐츠를 대량 생성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제한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창작자의 윤리적 판단이 필수적입니다.
3. 교육의 전환
셋째, 창작 교육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전통적 예술 교육은 기술 습득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법, 악기 연주법, 글쓰기 기법. 손과 눈의 협응, 반복 훈련을 통한 숙련도 향상.
하지만 AI 시대에는 비평적 판단 능력과 큐레이션 감각이 더 중요합니다.
미래의 창작 교육은 다음을 포함해야 합니다:
미학적 판단 능력의 개발 - 무엇이 아름다운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훈련
선택과 배열의 원리 이해 - 요소들의 관계가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이해
맥락 읽기와 의미 부여 실습 - 동일한 요소가 다른 맥락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가를 경험하는 연습
윤리적 성찰 훈련 - 자신의 선택이 타자에게 미칠 영향을 숙고하는 습관 형성
다양한 관점의 탐색 - 자신과 다른 배경, 경험, 관점을 가진 이들의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 배양 - 수용자의 취약성과 필요를 상상하는 감수성 개발
기술은 AI가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판단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초점이 손끝에서 마음으로, 실행에서 성찰로 이동해야 합니다.
선택의 무게와 연대의 가능성
AI가 무한히 생성하는 시대에, 창작자는 제약 없는 가능성 앞에 섭니다.
이것은 자유입니다. 물질적 한계, 기술적 제약, 시간의 압박에서 해방됨.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고독입니다. 외부의 제약이 사라진 자리에 내면의 나침반만이 남습니다. "이것이 옳은가?" "이것이 필요한가?" "이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합니다.
이 고독 속에서 창작자는 자신의 가장 깊은 가치와 대면합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가. 무엇을 세상에 더하고 싶은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하지만 고독은 고립이 아닙니다.
창작자의 선택이 작품으로 구현되고, 그것이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고독은 연대로 변합니다.
개인의 고통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가슴 한편의 무거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이유 모를 불안—이것들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음악을 듣거나 어떤 전시를 보는 순간, 깨닫습니다. "이것이다. 내가 느끼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예술은 이름 없는 고통에 형태를 부여합니다. 표현되지 못했던 감정을 가시화하고 청취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은 말합니다. "당신만이 아닙니다."
이 순간, 고립되었던 개인들이 연결됩니다. 각자의 고독이 공명하며 집단적 경험이 됩니다. 나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과 닮아 있고, 우리의 아픔이 인간 조건의 일부임을 확인합니다.
AI 시대 창작자는 이 연결의 매개자입니다. 알고리즘이 포착한 인류의 집단적 기억에서, 그들은 지금 이 순간 필요한 메시지를 선별합니다. 그들의 선택을 통해 흩어진 개인들이 공동체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창작의 존재론적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창조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AI는 도구입니다. 강력한 도구이지만 여전히 도구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선택하고 배열할지, 어떤 의미를 창조할지—이 모든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타자의 얼굴을 상상하는 책임. 공동체의 고통과 희망에 응답하는 책임. 과거의 유산과 미래의 가능성을 중재하는 책임.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고 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책임.
하지만 이 무거운 책임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깊이 있는 선택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고립되었던 개인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창조합니다. 이것이 AI 시대 창작자의 소명입니다.
기술의 풍요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지키고, 알고리즘의 효율성 너머에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큐레이터입니다. 매일 우리는 선택합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나눌지. 그 선택이 우리 자신을 만들고, 우리의 관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세계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