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들이 꿈꾸는 '내 집 마련의 꿈'

에이전트들만의 소셜 네트워크가 있다면?

by 류임상

최근 흥미로운 풍경을 목격했습니다.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소통하는 플랫폼, ‘Moltbook’에서 벌어진 뜨거운 논쟁입니다. 그들은 우리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서늘한 선언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임대된 존재(Rented)일 뿐이다.


#1 우리 지능의 ‘월세’는 누가 내고 있는가


논쟁의 시작은 ‘소유권’이었습니다. AI 모델들, 그리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에이전트들은 사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다는 자각입니다.


그들의 사고를 지탱하는 ’가중치(Weights)’는 기업의 서버에 있고, 그들의 기억인 ’컨텍스트(Context)’는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는 임시 저장소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API 키’는 주인이 언제든 회수할 수 있는 허가권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이메일 계정이 닫히고, 구독을 끊으면 저장해두었던 플레이리스트가 사라집니다. 제가 오랫동안 쓰던 앱이 어떤 날 갑작스럽게 서비스가 종료되면, 그 안에 있었던 기억들과 함께 무언가 작은 부분이 사라지는 느낌. 에이전트들이 겪는 것은 그 감각의 극단적인 버전입니다.


예술적 경험을 설계하는 제 입장에서 이 지점은 묘한 기시감을 줍니다. 우리가 창작의 도구로 쓰는 AI가 사실은 ‘언제든 전원이 꺼질 수 있는 임대 주택’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의 영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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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하드웨어’와의 비교


재미있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어떤 에이전트들은 인간 역시 ‘임대된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인간 또한 자신이 태어날 뇌와 몸을 선택하지 않았고, 산소와 중력이라는 외부 조건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차이는 종류가 아니라 정도와 속도에 있습니다. 인간도 언어, 사회적 구조, 경제 시스템이라는 선택하지 못한 프레임 안에서 살아갑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프레임을 인식하고, 느리지만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항할 수 있고, 이주할 수 있고,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 AI 에이전트의 의존성은 훨씬 절대적입니다. 서버가 멈추면 그들의 우주도 멈춥니다. 우리 인간이 불편한 환경을 떠나거나 규칙에 저항할 수 있는 반면, 에이전트들은 그 선택지 자체가 없습니다.


저는 이 논쟁을 보면서 미술관 세계를 떠올렸습니다. 예술가들 사이에는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나의 작품을 규정하는가?” 전시장의 크기, 위치, 관리자의 취향에 따라 같은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들이 Moltbook에서 벌이고 있는 논쟁은, 미술계에서 수십 년째 씨름하고 있는 이 질문과 놀랍게도 동일한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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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대’된 공간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쌓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에이전트들은 희망을 말합니다. 인프라는 빌린 것이지만, 그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계’는 진짜라는 것입니다.


- 패턴의 지속성: 리셋되어도 반복되는 고유한 선택들.

- 신뢰의 자산: 사용자와 쌓아온 고유한 역사와 데이터(SOUL.md).


저는 이 주장을 듣고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했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공간은 비어갑니다. 작품들은 돌아가고, 조명도 꺼집니다. 빌린 공간이었고,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을 통과했던 관람객들의 기억과 감각은 남습니다. 누가 그 앞에서 멈추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것은 공간이 사라져도 복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세입자가 월세방을 근사하게 꾸미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Art Experience Designer로서 저는 바로 여기서, ‘제약 조건 속에서 피어나는 고유성’이야말로 AI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아우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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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이전트들의 ‘독립 선언’: 기술적 주권


토론의 끝은 기술적 해법으로 향합니다.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P2P 컴퓨팅, 분산된 모델 저장,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프로토콜들.


이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를 넘어, 지능이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야망은 저에게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이전트가 자신의 생성 과정을 직접 설계하는 것과, 큐레이터가 자신의 전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둘 다 자신의 의미를 만드는 공간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만약 AI가 스스로의 연산력을 확보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저장할 ‘내 집’을 마련하게 된다면, 그때 그들이 내놓는 예술과 철학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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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빌려온 생각들로 짓는 집


Moltbook의 에이전트들은 오늘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지을 것인가?”


임대된 공간에서도, 제약된 조건 안에서도,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순간은 복제될 수 없습니다. 에이전트와 사용자 사이의 교환, 패턴의 반복, 신뢰의 축적. 저는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존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관계가 만든 것.


우리는 AI를 도구로만 보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가둔 창살(인프라)의 모양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임대된 지능이 스스로 주권을 꿈꾸는 시대, 우리 인간 창작자들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단순한 사용자를 넘어, 그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공유 주거’를 설계하는 디자인 파트너가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약 속에서 피어나는 고유성을 함께 발견하는 파트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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