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멜로드라마 마지막회를 보지 못할까

내가 선택한 미완성으로 가는 길

by 류임상

#1

멜로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보지 '않게 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느 순간 리모컨을 드는 손이 무거워지고, 다음 회를 재생하는 클릭이 미뤄집니다. 그렇게 드라마는 마지막 2-3회를 남겨둔 채 서랍 속에 들어갑니다.


#2

멜로드라마의 본질은 갈망과 결핍에 있습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말할 듯 말하지 못하는 입술, 잡을 듯 놓쳐버리는 손. 그 사이의 긴장이 우리를 화면에 붙들어둡니다. 비 맞으며 우는 주인공에게 우리는 최고조로 몰입합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순간, 그 긴장은 풀립니다. 카페에서 미소 짓는 주인공을 보는 순간, 채널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3

행복은 서사를 죽입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이야기의 끝이지 시작이 아닙니다. 더 이상 갈망할 것도, 결핍도 없습니다. 애절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평화로운 일상뿐이고, 평화로운 일상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행복을 원했지만, 정작 그들이 행복해지면 더 이상 볼 것이 없어집니다.



#4

흥미로운 것은 시청 방식에 따라 이 현상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넷플릭스처럼 모든 회가 한 번에 공개되면, 마지막까지 보게 됩니다. 하지만 매주 한 회씩 공개되는 드라마는 중간에 놓치기 쉽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다림의 문제가 아닙니다.


#5

몰아보기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감정의 흐름입니다. 넷플릭스는 정확히 언제 다음 에피소드를 자동 재생할지, 오프닝을 건너뛸 수 있게 할지, 어떤 썸네일을 보여줄지 계산합니다. 애절함의 열기가 식기 전에 다음 화로 넘어가고, 그 momentum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밀어붙입니다.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의문을 품을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의 긴 영화처럼, 끝까지 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최적화된 감정 경험입니다.


#6

반면 매주 기다리며 보는 드라마는 알고리즘이 아닌 시간의 리듬을 따릅니다. 일주일마다 식었다 다시 데워지기를 반복합니다. 그 사이에 일상이 끼어들고, 현실이 개입합니다. 애절함이 최고조였던 순간은 점점 멀어지고, 어느 순간 그 열기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계속 가기엔 이미 식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생깁니다.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지?"라는 거리두기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최적화되지 않은, 인간적인 리듬입니다.



#7

애절함은 momentum입니다. 멈추지 않을 때만 그 힘을 유지합니다. 일주일이라는 간격은 그 momentum을 끊기에 충분합니다. AI 시대의 콘텐츠 소비는 이 momentum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자동 재생, 추천 알고리즘, 숏폼의 무한 스크롤. 모두 우리가 멈추지 않도록, 생각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8

매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것은 생각해볼 지점입니다. 매주 새로운 음악과 영상을 올리는 것은 momentum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식어버릴 위험을 안고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일주일이라는 간격이 기다림을 만들어낼까요, 아니면 이탈을 만들어낼까요? 알고리즘이 최적화한 몰아보기의 시대에, 매주 만나는 리듬은 구시대의 유물일까요, 아니면 인간적 호흡의 마지막 보루일까요?


#9

어쩌면 매주 방영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저항일지 모릅니다. 최적화된 흐름을 거부하고, 멈출 수 있는 권리.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마지막회를 보지 않는 것은 하나의 선택입니다. 애절함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행복해진 주인공들의 평온한 얼굴보다, 비 맞으며 울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끝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 드라마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가능성의 상태로. 알고리즘이 정한 완결이 아닌, 내가 선택한 미완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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