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이상한 이야기
저는 영어 가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해외 팬을 겨냥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 시장을 분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한국어로, 제가 쓰고 싶은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SoundCloud의 미국(America) Trending Pop 차트에서 제 노래가 42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잠깐 멍해졌습니다.
차트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위에는 149K 스트림을 기록한 보컬로이드 기반 곡이 있었고, 24K, 27K, 20K 같은 숫자들이 보였습니다. 어떤 곡은 'Slowed', 어떤 곡은 'Remix', 어떤 곡은 이미 글로벌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의 이름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한국어 제목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대비가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 차트에는 메이저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이미 세계적인 팬층을 가진 이름들. 팬덤이 밀어 올리는 노래들. 그런데 저는 팬덤도 없고, 회사도 없고, 번역 자막도 없고, 영어 가사도 없습니다. 그저 한국어로 쓴 노래 한 곡이었습니다.
차트는 단순히 재생 수를 세지 않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이 붙었는지를 봅니다. 얼마나 클릭됐는지, 얼마나 오래 재생됐는지, 얼마나 공유됐는지를 계산합니다. 그 계산의 결과가 42위였습니다.
이건 단순히 "많이 들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영어권 청취자들 사이에서 제 노래의 반응 속도가 상위 50위 안에 들어갈 만큼 빨라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물론, 차트-인 한 곡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에 글을 썼듯, 차트 1위 곡도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ax-collector/105
베트남, 중동, 영국등 다양한 차트에서 랭크인 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Pop 차트가 상징성은 참 귀합니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을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멜로디를 먼저 들었고, 리듬을 먼저 느꼈고, 감정을 먼저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언어는 뒤에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큐레이터로 살았습니다. 전시를 만들고, 작품을 고르고, 관람객의 동선을 설계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배운 건 하나입니다. 감동은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감동도 설계됩니다. 음악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곡을 히트를 노리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실험을 했습니다.
가설은 단순했습니다. 한국어 감정은 글로벌에서 통하는가. 감정 밀도가 충분하면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가. AI 기반 제작이라도 시장 퀄리티를 통과할 수 있는가.
미국 차트 50위권 진입은 이 가설이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튜디오가 없어도 음악을 만들 수 있고, 레이블이 없어도 시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장벽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장벽의 형태가 바뀐 것입니다. 이제 장벽은 알고리즘이고, 유지율이고, 오프닝 15초입니다.
그렇다면 예술도 달라져야 합니다.
감으로만 만든 작품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건 실력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새로운 장벽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구조만 쫓으면 알고리즘은 통과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음악이 됩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감정은 날것으로 두되, 구조는 설계합니다. 한국어의 감성은 지키되, 글로벌 시장의 문법을 읽습니다. 이건 타협이 아닙니다. 새로운 형태의 창작입니다.
42위에서 지금은 50위권으로 조금 내려왔습니다. 숫자는 흔들립니다. 차트는 냉정합니다. 하지만 한 번은, 이 거대한 영어 시장 안에서 한국어 노래가 42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순위는 결과고, 저는 원인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예술가는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의 언어와, 알고리즘의 언어. 그 둘을 함께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장벽 너머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실험 중입니다.
이건 거창한 세계 진출의 서사도 아니고. 성공 선언도 아닙니다. 그저 언어가 벽이라고 믿었던 저에게 알고리즘이 남긴 작은 균열입니다.
음악은 번역 없이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그 질문에 42라는 숫자가 답을 했습니다.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A9-ZOJ9o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