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부른 노래는 며칠 동안 살아남을까

거짓말처럼 조용히 잊혀지는 이야기

by 류임상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수만 명의 화면에 닿았던 매혹적인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다음 주가 되면 거짓말처럼 조용히 잊혀집니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다듬어 생성 버튼을 누르면, AI는 지치지도 않고 감미로운 보컬과 세련된 비트를 토해냅니다. 손끝에서 매주 새로운 음악과 영상이 탄생하는 경험은 실로 경이로웠습니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50여 개의 뮤직비디오를 쉼 없이 세상에 내보냈고, 어느덧 5만 명이라는 적지 않은 분들이 그 결과물에 환호해 주었을 때 저는 마치 대단한 마법 지팡이를 쥔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음 작업을 기획하고 영상을 업로드하던 어느 날, 모니터 앞에 앉아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눈부시게 완성된 이 콘텐츠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소비되고, 또 그만큼 빠르게 휘발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숨결이 닿지 않은 채 0과 1로 직조된 목소리에는 필연적인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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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주 쏟아지는 완벽함의 무게


지금은 텍스트 몇 줄이면 시청각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결과물을 1분 만에 얻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음악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도구들을 넘나들며 매주 고품질의 작업물을 쏟아내는 일상은 분명 압도적인 생산성을 자랑합니다.


구독자 수가 늘어나고 조회수가 폭발하는 환희의 순간은 강렬합니다. 하지만 그 짜릿함 뒤에는 이내 서늘한 피로감이 밀려옵니다. 다음 주가 되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또 다른 완벽한 자극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일찍이 "미디엄이 곧 메시지"라고 선언했습니다. 생성형 AI라는 미디엄이 보편화될수록, 그 안에서 탄생한 콘텐츠들은 서로를 구별할 수 없는 동질적 흐름 속으로 용해됩니다. 곡을 완성하는 물리적 시간이 극단적으로 단축된 만큼, 대중이 하나의 작품에 머물며 감상하는 시간 역시 잔혹하리만치 짧아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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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과 1의 목소리에는 '서사'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의 유통기한이 유독 짧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부재에 있습니다.


우리가 요루시카나 오피셜히게단디즘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오래도록 곁에 두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멜로디가 매끄러워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가사 이면에 숨겨진 깊은 철학, 인간적인 결핍, 그리고 고유한 세계관이라는 '서사'에 우리의 마음이 동하기 때문입니다.


인지과학자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인간이 정보를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서사적 사고(Narrative Thinking)'에 기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유독 빨리 잊히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우리 뇌의 서사적 회로를 충분히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AI는 미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도출해 냅니다. 그러나 그 곡이 왜 지금 세상에 나와야만 했는지, 창작자가 어떤 고뇌를 거쳐 이 선율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서사는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촘촘한 서사가 결여된 완벽함은 결국 다른 화려한 완벽함에 의해 너무나 쉽게 대체되고 맙니다.


#3 콘텐츠 생성을 넘어 '예술 경험'의 설계로


이 짧은 유통기한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더 빠르고 화려한 결과물을 쉴 새 없이 찍어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도구가 내어준 매혹적인 결과물을 그저 수동적으로 나열하는 '생성자'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진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독창적인 감각과 맥락을 직조해 내는 '예술 경험 설계자' 로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 한 곡, 보기 좋은 영상 한 편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이것을 마주하는 관객에게 어떤 철학적 질문과 울림을 던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생성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선택과 배치와 의미 부여라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오히려 더 깊은 무게를 지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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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통기한을 지우는 마법


도구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창작자의 역할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부른 노래 자체의 생명력은 어쩌면 정말 며칠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창작자의 짙은 철학과 기획 의도가 개입되어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된 예술은 다릅니다. 미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에서, 예술의 본질은 완성된 오브제가 아니라 감상자와 작품 사이에서 살아 흐르는 경험의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AI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와 그 여운은, 알고리즘의 파도를 넘어 누군가의 마음속에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생성된 결과물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마법은, 결국 사람의 깊은 고민 끝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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