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乖離)

일상

by Axiom


"괜찮죠?"


골절 수술을 끝낸 뒤 내가 항상 주변 직원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직원들은 C-arm 이미지(수술실용 X-ray 이미지)가 띄어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대답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직원의 커리어 기간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괜찮습니다. 좋은데요?"

"음... 잘된 거 아닌가요?"

"저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긴 하다.

내가 먼저 수술 결과가 좋다고 확신한 후에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것은 왜일까?

날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들께서 항상 그랬었어서 그저 따라 하는 걸까?

아니면 잘되었다고 직원들에게 아부라도 받고 싶은 건가?

둘 다 아니다.

대다수의 정형외과 전문의들이 수술이 끝나고 주변 사람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혹시나 모를 자기 미화 때문이다.

수술 직후엔 내가 행한 수술 결과가 나중에 수술방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 그러한 착각에 빠지지 않았는지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괜찮냐고 질문을 던지면서,

나 자신도 수술 결과를 한 번 더 의심하고 다시 점검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과연 뼈가 붙을 것인가?'


적은 확률로 발생하는 '불유합'같은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지식에 대한 의심이다.

그것들이 이제까진 참이었지만 미래에도 참이라는 보장이 있느냐 문제이다.


'환자의 뼈가 붙을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기저에는 다음 명제들이 있다.


1. 모든 인간의 뼈에는 골형성세포가 있다.

2. 내 앞에 앉아있는 이 환자는 인간이다.

3. 그러므로 이 환자의 뼈에는 골형성세포가 있다.

4. 골형성세포는 (매우 높은 확률로) 골절 부위의 유합을 일으킨다.

5. 그러므로 이 환자의 골절 부위는 유합 될 것이다.


내가 의심하는 명제는 1번이다.

내가 가진 의심은 '만약 이 환자가 그동안 나타나지 않은 유일한 예외라면?'따위의 것이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과거에 반복적으로 관찰된 것이 미래에도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장 중요한 전제인 1번도 결국은 과거의 위대한 의학자들께서 조직검사 등의 연구 방법들을 통해 '귀납적'으로 증명한 명제이다.

결국 내가 가진 의심은 귀납적 증명에 대한 의심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확실히 아는 것'과 '실제'사이에 괴리가 있을까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의 지식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가도 의심스럽다.

누구나 인정하는, 자명한 참으로 밝혀진 지식들조차 의심하고자 하면 의심할 수가 있는데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앎'에 대해서 확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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