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형외과 레지던트다.
나는 20대 내내 비혼주의자였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부터 결혼이란 것에 괴리감을 느꼈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의문들 때문이었다.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모든 면을 존경하진 않는다.
어떤 부분은 존경하지만 또 어떤 부분에 대해선 원망한다.
그리고 내게 있어선 그 원망스러운 점들을 극복하는 게 평생의 과제였기에,
비겁하고 나약해질 때면 그를 핑계삼기도 했었다.
모든 인간이 완벽할 순 없으니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아무리 애를 써도 완벽한 남편, 아버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소위 말하는 ‘어리석은 완벽주의자’였기에,
이상적인 가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결혼이란 것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혼하지 않고 알차게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었고,
나도 저렇게 혼자만의 삶으로도 만족하며 살고 싶단 생각을 했었었다.
직장 동료 중에 좋은 본보기로 삼았던 비혼자가 있었다.
그분은 병동 수간호사로, 책임감 있고 카리스마 있으며 무엇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 어떤 문제가 생겨도 발 벗고 나서서 척척 해결하는 멋있는 병동의 리더였다.
가끔 병원 밖에서 그분을 목격할 일이 간간히 있었는데,
여가를 즐기는 그분의 표정에 우울함이라곤 단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완전히 만족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면부터 외면까지 무언가로 꽉 찬 듯한 아우라가 느껴졌었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지 않게 된다면 그런 충만함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비혼주의 관점에 자그마한 균열을 낸 환자를 만났다.
어깨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받으러 온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였는데,
소위 말하는 ‘성공한 골드 미스’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환자 정보에 미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에 비혼자임을 알 수 있었다. 돌싱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어 준재벌급의 자산을 축적했으며,
당시 어느 고급 아파트의 펜트 하우스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병동도 가장 비싼 VIP실을 쓰고 있었으며 병실에 대충 널브러진 물건들도 꽤 값이 나가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선 그녀가 가진 재산만큼의 충만함이 보이지 않았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특히 외로워 보였다.
보호자는 없었으며(부모님과 관련된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간혹 몇몇 지인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오랜 시간 머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조선족 간병인 아주머니와 보냈는데,
그 환자와 간병인 아주머니는 이상하게도 트러블이 많았다.
하필 환자가 고용한 간병인이 다른 간병인 분들보다 한국어가 서툰 아주머니였고,
그로 인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나도 그 간병인 분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게다가 둘 다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어 누가 봐도 잘 맞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입원 생활과 관련된 온갖 사소한 문제들로 둘은 사사건건 부딪혔고,
교수님이 방문할 때조차 병실에는 항상 묘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동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VIP병실에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병실로 가보니 환자가 간병인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진정시키려 해도 환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나운 단어들을 쏟아 냈고,
간병인은 등 돌린 채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환자가 주장한 원인은 ‘간병인이 자신을 무시한다.’였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수일간 쌓인 갈등이 폭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어찌어찌 겨우 환자를 진정시키고,
병동에서 다시 일을 하려는데 간호사들이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진짜 VIP실 환자 왜 저러나 몰라요. 왜 저렇게 예민한지... 저한테도 엄청 짜증 낸다니까요? 뭔가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게, 그런데 내 생각엔 저 간병인도 문제야.”
“그나저나 저 이번에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
“뭘?”
“결혼이요. 저런 거 보면 해야 될 거 같기도.”
“결혼?”
“남편이 있었으면 저런 일을 겪겠어요? 입원한 것도 서러운데 보호자 없이 한국말 못 하는 아줌마랑 투닥거리고 있는 거 말이에요. 완전 싫어.”
대충 이런 식의 대화였는데,
이상하게도 어린 간호사의 마지막 대사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었다.
물론 VIP실의 환자가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겠지만,
환자의 편인 누군가가 있었다면 조금은 더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는 건 무시하지 못할 사실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생 건강할 줄 안다. 아플 때 혼자이면 서럽다.'
결혼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진부한 이유들 중 하나이다.
막상 그에 해당할 수도 있는 예를 목격하니 진부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더하여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가 20대 내내 [결혼이 왜 필요 없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결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 보고 공부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혼자로서 살아가는 수간호사의 충만함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동료들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즉,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결론부터 지은 후 그 이유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결혼이란 것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한 쪽의 길로만 치우쳐서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조심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비단 결혼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