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을 앞둔 그대에게

by 태이

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 남는 시간은 많고 인생 앞길은 요원할 때. 이 지루한 시간을 견디거나 버티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재밌는 사건을 만들고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모임을 나간다. 또 다른 이는 도피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끊임 없이 침잠한다. 아마 MBTI로 구분하자면 전자는 E일 것이고, 후자는 I일테다. 이 글을 쓰는 나도 I인만큼 나만의 안전 가옥 안에서 반복되는 삶을 지루해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인생에 중요한 순간, 특히 어떤 일을 하며 먹고 살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늘 숨막혀 하는 것 같다. 평범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뛰쳐나온지 어느새 두달이 넘은 시점에 시민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그들과 나를 비교하는 모난 마음이 들이 찬다. 가까운 친구가 펴낸 책을 읽고 질투심을 느끼며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이였다니'하는 자책도 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엮어 내기까지 친구가 버텨왔던 소중한 시간을 왜 모르겠는가. 그치만 그 시간을 안다고 해서 내 불 같은 질투심에 찬물이 확 끼얹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 챕터씩 읽기를 끝내면 마음은 강하게 동요한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아끼는 친구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보자고 다짐한다.


중요한 선택을 앞둘 때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인생의 향방을 바꿨던 여러 선택을 돌아보며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지?'하고 곰곰히 생각해본다. 엉덩이에 종기가 날때까지 의자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공부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후회없이 수능 결과를 받아들고 나는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겠노라 결정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중학교 3학년 학교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어린 누군가에게 죽지 않아도 되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쓸모와 역할이라면 충분했다.


대학교 졸업반, 누군가는 논문을 쓰고 누군가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제일 친한 친구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겠노라 선언하며 집 근처 사회복지관에 취직했다.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공부를 좋아하니 대학원에 갈까 아니면 부모님의 바람(또는 염원)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나. 그 때 동네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던 청년 모임의 사회복지사가 나를 끌어 당겼다. 청년 단체를 함께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선택의 순간은 찰나. 길게 고민하지 않고 하겠노라 대답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이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고 그로 인해 삶이 바뀌는 운명같은 일의 반복이.


단언컨데, 참으로 복받은 삶이다. 나의 재능과 성정을 알아채고 무언가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사람이 주변에 늘 있다는 건. 이런 기회는 모두에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다. 제안해준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선택을 가벼이 여겨 수락한 것이 아니라는 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늘 최선보단 차선이라도 되려고 노력한다. 결과물이 좋으면 베스트, 과정이라도 좋으면 굿이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러니까 나 같은 이들에게 작지만 애정 어린 응원을 보내고 싶다. 보이지 않는 앞길을 더듬어 나아가는 고통은 그대들만 겪는 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기 싫은 루틴에 갇혀 답답해 하는 것도 그대들만의 시간이 아니다. 맹자 왈, 하늘은 크게 될 사람에게 미리 견디기 힘든 고난과 시련을 주어 대인인지 확인한다. 아마 그대와 나는 시험 기간의 어느 중간에 있을 거다. 이 시험이 끝나면 만족스런 성적표를 받아들 테니, 지금은 매일을 후회없이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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