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이 울면서 태어났던 것 생각하기

진짜로 나는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인가 고민하던 찰나에 쓰는 글

by Ax

엄마는 항상 내가 어렸을 때 빽빽 용을 쓰면서 운 적이 없다고 했다. 빠득빠득 우겨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운 적도 없었고, 칭얼거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혼나거나 그럴 때 빼고는 그닥 운 기억이 없다. 심지어는 내가 태어났을 때도 힘차게 울지 않고, 목에 힘 하나 안 주고 울었다고 그랬다.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힘들다 힘들다 입에 붙여놓고 살기는 하지만 항상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누가 나한테 '정말 힘들겠다' 식의 위로를 해주면 그게 그렇게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스트레스에 강하다고 생각했다.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 딱 한 번 했었고, 그걸 할아버지 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남매의 여름밤>을 봤는데 주인공 여자애를 안아주고 싶었다. 근데 사실 알고 있긴 했다. 내가 걔를 안아주거나, 걔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하더라도 그 친구한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한심하고, 엄마는 밉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보고싶으며, 동생은 철이 없어서 기댈 수가 없다. 유일하게 남은 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는데, 위로와 무관심 그 어딘가에 있어서 그나마 기대다가도 못 기대는 그 마음.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떠나 보냈을 때 집에 와서 엉엉 우는 주인공을 보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어렸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이것 저것 결핍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내가 나를 연민하다가도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불쌍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화가 난다. 참 배배 꼬인 사람이다. 불쌍하지 않으면 맘 놓고 기뻐하면 되는데, 왜 불쌍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을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어서 내 불쌍함이 아무렇지 않은 게 되어서 억울해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나는 안 괜찮은데, 괜찮다. 어떤 순간에는 너무 힘들다가도 또 곧바로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다. 근데 마냥 기쁘진 않고 그냥 그렇다. 또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드라마틱하게 침전할 만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일이 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처음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건 언제였나, 곱씹어 보면 초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싸운 걸 보고 엉엉 운 탓에, 그 주인공 여자애처럼, 그 다음날 눈이 많이 붓곤 했다. 나는 내가 쌍커풀이 있는 눈이라는 게 그래서 싫었다. 쌍커풀이 있어서 울고 난 다음 날 그 주름 하나가 겨우 사라졌을 뿐인데 눈이 부은 게 더 티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눈이 이상해지면 매일 등교하기 전에 차가운 물로 세수도 하고, 손톱으로 계속 쌍커풀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에는 종종 라면 먹고 잤다는 거짓말을 했다. 더 큰 다음에는 아예 잠을 안 잤다. 부은 눈을 만들 때까지 그렇게 엉엉 울 땐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밌었고, 그 때 나는 엄마아빠가 싸운 것이 기억이 안 났다. 진짜로 즐거웠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우울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첫 번째. <남매의 여름밤>을 보는데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옥주(주인공 이름이다)가 제일 먼저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제일 힘들다고 생색낼 수 있는 사람이 옥주였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이혼한 엄마가 찾아왔는데 자기는 안 깨우고 동생에게만 인사를 하고 간 걸 알았을 때 옥주 표정. 옥주도 어리다. 나도 어렸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겉으로는 쌩하게 굴고 싶지만 마음은 정말 하나도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두 번째. 왓챠 후기는 별로였다. 다들 가족이나, 할아버지 이야기, 보편적인 유년시절,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옥주 같은 내가 떠올라서 하나도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옥주 같은 내가 느꼈고 느껴 온 그 답답하면서도 괜찮은 것 같은 마음, 근데 또 막상 누르려니 억지로 눌러져서 이상하게 배어나오는 울음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 마음을 보는데 어떻게 영화를 보고 저렇게 무미건조한 말들을 해댈까. 그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는 게 나같은 사람한테는 스스로 스트레스에 무딘 사람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해오던 시간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되는데. 라고 쓰기엔 너무 피해의식과 자의식 과잉에 찌든 사람 같지만 이 글을 쓰려던 게 아마 이 내용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여서였던 것 같다. 난 진짜로 힘든데 괜찮다. 괜찮은데 힘든 건 아니다.


김이듬의 시집을 읽었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젊은 시인인 것 같고, 아미가 읽어보라던 시는 왜인지 나오질 않는다. 아마도 다른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 같다. ⌜반불멸⌟이라는 시가 있었다.



작은 전시관이야 예전에 너하고 봤던 그 그림들이야 ⌜카페에서, 르탕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그 작품 생각나니? 반 고흐 애인으로 알려진 여자 초상화 말이야 근데 그 초상화 밑그림으로 다른 여자의 상반신이 그려져 있네 ⌜포도⌟에도 ⌜노란 장미가 담긴 잔⌟에도 다른 못 그린 그림들이 숨겨져 있어 가난한 화가가 재활용한 캔버스의 밑그림이 훤하게 보이는 거야 이렇게 회화에 엑스레이를 쐐보면 덧칠하기 전에 그린 그림들이 보인단 말이지 그가 덮어버린 스케치 감췄다고 믿었던 수많은 물감칠 안간힘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들통 나는 거야

전시관 앞 기념품 가게 모퉁이에서 엽서에 몇 자 적어 보낸다 내가 죽거든 내 작품에 엑스레이나 전자현미경을 들이대지 마 낙서도 만화도 아닌 거 훔쳐본 누드 종이를 불에 그을려보지 마 덧칠한 시와 산문들 눈물이 마르지 않은 종이 위에 쓴 명랑한 노래 그지없이 한심한 필체나 지웠다가 쓰고 다시 덮어버린 잿빛 모래 위 갈매기 같은 글자를 보지 않길 바라 이걸 읽으며 넌 키득키득 웃어넘기겠지 한심한 네 작품을 누가 힘들여 분석하겠냐며 답장을 쓸지도 모르지 내가 죽거든 다시는 못 살아나게 지켜줘 내 얘길 하지도 마 일기든 메모든 수첩이든 불태워줘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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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추어보지 말아달라고 말하면서 나의 죽음을 언급하는 심리는 무얼까? 자꾸 쑤셔보지 말라는 것에 방점이 있는 걸까 나의 죽음에 방점이 있는 걸까? 불태우려면 어쨌든 보게 되니까 그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옥주도 그 이층방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낼 때 엄마나 할아버지가 와서 한 번 쯤 토닥여주는 걸 기대했던 건 아닐까? 이번만큼은 동생의 재롱으로 하하호호 웃는 게 아니라, 자기가 엉엉 울 때 누군가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그래서 딱 한 번이라도 누군가 저 시의 화자뿐만 아니라 옥주의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울고 화내는 걸 한 번 정도 봐줬으면 그런 장면, 그런 글이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방에서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어도 티가 나는 거라고는 눈밖에 없었던 게 너무나도 야속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응어리가 맺혀서 아직까지도 안 괜찮은데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한 번 나한테 연민을 느껴본다. 그 연민이 쌓이고 쌓여서 두꺼워지면 겉으로는 평평해진 마음은 다시 또 나를 갉아먹고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내몬다. 나는 그만큼 평평해졌으니까 안 괜찮아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게 마음을 더 꾹 눌러서 아래로는 더 깊게 무언가가 패인다. 상처인지도 모를 만큼 패여서 지금쯤 되면 상처인가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 낸 환영인가 알 수가 없다.


또 이만큼 뱉어 내고 나면 그 다음날은 괜찮다. 왜 그렇게까지 심각했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 기억이 잘 안 난다. 글로 남겨놓으면 덜하다. 근데 좀 웃기긴 하다. 가끔은 내가 한 명 더 있어서 내가 이렇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맘 편하게 이것저것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웃겼구나 싶은 생각이 안 들 것 같기 때문이다. 곁에 누가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야 될 것 같은 마음은 참 지워내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