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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26. 2023

힘내세요(3)

그보다 더 좋은 말

"부리~! 잘 지내나? 보고 싶다. 시내 한 번 나와야지."

"앗! 과장님! 당연히 나가야죠. 언제가 괜찮으세요?"


직장생활을 넘어 인생의 롤 모델로 여기는 과장님이 있다. 일도 딱 부러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흠잡을 데 없이 좋은 분이다. 깡촌에 처박힌 내 안부가 궁금해 가끔 연락을 주기도 하고 시내로 불러내 밥을 사 주시기도 한다. 직장동료 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아이들 성향이나 가정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여자지만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별난 아들과 말 없는 딸을 키우는 엄마라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은 우리는 그 장벽을 일 년 전쯤 허물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장님과 만나면 아이들 문제, 사내 이슈, 책이나 취미 등 넓고 깊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곤 했다.


하지만 편백찜을 잘한다는 그 집에서 과장님을 만나기로 한 날은 달랐다. 꼭 하나 남겨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고 될 수 있다면 두고두고 비밀로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꽁꽁 동여매고 약속 장소로 갔다. 하지만 과장님은 까칠해진 내 몰골을 바로 알아차렸고, 과장님의 안부 한 마디에 동여맨 이야기 끈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부리! 얼굴이 왜 이래? 더 야위었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과장님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요. 젊은 교사 일도 그렇고 그 만화가 사건도 그렇고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그래. 아들내미 때문에 그러제? 그 기사 보면서 네 생각나더라. 너 분명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요즘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슈를 접하며 나를 걱정을 했다는 과장님의 말에 아들을 향한 그간의 내 염려를 쉬이 흘려듣지 않은 과장님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얼마나 우리 아들 흉을 늘어놨으면 남에게까지 걱정을 끼쳤는지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별개로 봉인이 해제된 이야기는 계속 흘러 나왔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ADHD검사 받으러 갔다 왔어요. 저 쉬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 잘했다. 결과는 언제 나오노?"

"결과는 2주 뒤에 나오는데요. 그냥 검사 과정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검사 과정을 다 지켜봤거든요."

"아.... 위로는 안 되겠지만 그런 집 많다. ○차장 알제? 그 집도 그렇다. 내가 애를 직접 봤는데  예쁘더라. 남들 시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부모니까 더 걱정스럽게 여겨고 그런 걸 수 있다."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 같아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많이 먹어라. 힘내야지."


과장님은 집게로 잘 익은 고기 한 점과 숙주나물을 집어 내 접시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오랜 염려였다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아들의 이야기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차올라 무엇을 더 집어넣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없이 과장님을 쳐다보았다.


"먹어. 힘내야지. 먹고 국가정원 한 바퀴 돌자. 나 니 만난다고 오후에 반차 내놨다."


힘내라는 말이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고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우리 집 빵이는 돌이 될 무렵, 12가지 이상의 색을 구분하고 색 이름을 알았다. 조사나 어미 활용이 다소 제한적이었지만 문장의 형태를 갖춘 말을 시작한 것도 만 18개월이 되기 전이었다. 돌이 지나자마자 어른 도움 없이 스스로 걷기까지 했으니 누나인 똥이에 비해 인지, 신체적 발달이 한참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궁금한 것도 많아서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예를 들면 책상 위로 올라가 앉는다거나 집안을 마구 뛰어다닌다거나,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겠다고 책장을 기어올라가는 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했다. 그만하라, 조심하라는 말을 수 없이 해도 듣지 않는 개구쟁이, 쉴 새 없이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는 장난꾸러기, 어른들이 그 뒤를 늘 쫓아다녀야 하는 양육하기 힘든 아이, 한마디로 말해 빵이는 어른들 말로 별난 아이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았기에 나 역시 아이가 지닌 단점을 '별나다'는 한 마디로 덮어 버린 채 살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간추린 영상으로 뜨는 ADHD 아이들의 행동, 젊은 교사들의 죽음, 점점 격렬해지고 과감해지는 빵이의 움직임은 나를 점점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종교적 신념이나 뚜렷한 세계관이 있는 것은 아니나 부모로서의 가장 큰 책무가 아이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고 믿어왔고 그 책무를 다 하기 위해 나름 노력해 온 사람으로서 이 숱한 신호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지역 내에 ADHD검사가 가능한 소아청소년클리닉을 찾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맘카페에서 입소문 난 병원은 예약이 2025년까지 꽉 차 있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일반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서 가야만 했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 마지막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곳도 두 달을 기다려야 검사가 가능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


검사 당일,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빵이로 인해 나는 장작 4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좁은 검사실 한편에서 빵이를 지켜보았다. 40분 아니 4분도 가만히 앉아있기 쉽지 않은 아이가 밀폐된 공간에서 4시간에 걸쳐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규범의 한계치를 벗어나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검사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아이는 검사실을 계속 돌아다니고 바닥을 기었으며 벽을 타오르려 했다. 모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ADHD에 대해 'Worm-like movement'라고 설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빵이가 내가 없는 곳에서 저런 행동을 보일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 분명한데 엄마로서 왜 진작 서두르지 못했을까? 고민만 하며 지내온 시간이 한스러웠다.


검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치료 방법과 관련된 글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약물 치료가 비용과 시간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의사 선생님이겠지만, 빵이의 경우 약물 처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먼저, 정신과 약물에 편견과 거부감이 있는 엄마를 설득하기로 했다. 빵이를 치료하는 데 있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의와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DHD 증세와 치료법에 대한 전문의들의 소견이 담긴 동영상 수 십 개를 찾아 보여주고 빵이가 검사 당일 보여준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단순히 짓궂다고 생각한 손자가 영어로 된 뜻 모를 병을 가졌다는 사실에 엄마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약물치료를 승낙해 주셨다. 큰 산을 넘었으니 이제 약물 치료와 병행할 상담치료를 알아볼 차례였다. 소아 ADHD 심리상담 및 행동치료가 가능한 심리상담소를 찾아보고 관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소아 ADHD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도 남겼다.



나는 늦었지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 아이로 인해 비롯  주변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래왔듯 하나하나 해결방법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렇게 하나하나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상처나 아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 그렇게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 더러 힘을 내라니, 남들 보기에 나의 삶이란 힘을 내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위태롭고 초라한 것인가? 힘을 내지 않으면 내 삶은 무너지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별 의미 없이 들어왔고 편하게 해 왔던  '힘내라'는 말이 싫어졌다.


국가정원을 한 바퀴 돌고 헤어질 때 과장님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과장님~! 힘내라는 말 싫어요. 제 삶이 힘을 내야 겨우 살아지는 것 같잖아요."

"응. 그래. 그러네."

"다음엔 좋은 소식 가지고 만나요."

"응. 나도 좋은 소식 만들어 올게. 오늘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

"네. 과장님. 감사해요. 다음에 봬요~!"


돌아오는 차 안, 목에 걸린 가시를 뺀 것 마냥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힘내라'는 링 안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복싱선수에게, 코트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농구 선수에게 관중들이 하는 말이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코트 안에서 이 말이 쓰일 때라면 힘의 추는 말하는 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다. 연민과 지지가 담긴 따뜻한 말이지만 지켜보는 자들이 싸우는 자들을 향해 하는 말이며, 힘을 가진 자들이 힘을 잃은 자에게 하는 말이다.


과장님은 고군분투 중인 내게 마음을 보태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적같은 희망이 필요했던 그날의 나에게 '힘내라'는 힘이 되지 못 했다.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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