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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May 11. 2022

돌싱글즈

흔해져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 때까지

"돌싱글즈 나가보는 건 어때?"


연예인의 SNS에 올라온 아주 소소한 이야기부터 방송, 영화 줄거리까지 기삿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잘 모르는 연예인도 아는 사람 같고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돌싱글즈도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본 것 같은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이 나의 대화 속으로 들어오다니...

"어휴, 말도 안 돼. 누군가를 만날 생각도 없고, 공개적으로 '나 이혼했어요'하고 드러낼 생각은 더 없어."
"왜~? 난 그 프로그램 보면서 꼭 나가보라고 하고 싶던데. 좋은 사람 만나야지."
"끼리끼리 만난다고, 난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날 만큼의 그런 단계까지 인격적 성숙을 이뤄내지 못했어. 지금 만나봐야 또 비슷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불행 속에 허덕이겠지."
"그 꼴을 보고, 그 시련을 거치고도 너처럼 담담하게 애들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는 애가 어딨다고? 마음을 항상 열어 놓고 있어."
"아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녀석이 외도하는데 내가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제정신이니? 너 가스라이팅 당한 거야? 그 녀석이 외도를 한 건 그 녀석 잘못이지 네 탓이 아니야."
"가스 라이팅은 무슨....... 그냥 이혼하고 일 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그때 그 사태를 좀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달까?"
"그런 생각일랑 싹 버리고, 항상 열린 마음, 알았지? 아직 만 나이로 마흔도 안 됐다고."

서른아홉과 마흔이 뭐가 다를 게 있는지 마흔도 안 됐다는 말에 웃음이 피식 나왔지만, 그와 관련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렀고 우리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다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 아이들이 잠든 나만의 시간에 늘 본 것 같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프로그램, 돌 싱글즈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출연자의 나이, 직업, 자녀 유무, 이혼 사유, 러브라인 등을 다룬 기사들이 넘쳐났다. 기사가 넘쳐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인데 이혼과 재혼이 우리 삶에 두루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편적 현상이라면 인사를 나누거나 식사를 하거나 뭐 그런 특별하지 않은 일이란 말인데, 난 왜 구태여 그렇게 감추려 했던 걸까?


아이들 아빠가 쏘아올린 불륜이라는 폭탄이 머리 위로 연이어 떨어진 이후 이혼이라는 물고 뜯는 싸움을 시작한 나는 싸움의 종식을 알리는 땅땅땅 망치 소리와 함께 도망치듯 친정으로 들어왔다. 친정이라 해봐야 살던 집과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있었기에 멀쩡한 집 놔두고 친정에 더부살이 하는 것 만으로, 늘 보이던 아이들 아빠가 동네에서 사라진 것 만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사기에 충분했다. 궁금증을 못 이긴 어른들이 친정엄마를 붙잡고 우리집 소식을 물어보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셋방 하나를 얻어 주소지를 옮기고 두 집 사이를 드나들었다. 혹시나 인정 넘치는 동네 어른 누군가가 아이를 붙잡고 동정을 가장한 확인사살을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이고 꼬마야. 아빠가 없어서 속상하겠네."

"아빠는 어디 가셨노? 돈 벌러 외국 갔나?" 


상상 가능한 질문들은 많았고 실제로 이런 질문들이 똥이와 빵이에게 가해질 확률도 높았다. 이 동네 문화가 아니 세상이 그랬다. 더 두려운 것은 그렇게 확인된 사실이 한 동네에 사는 며느리에게로 딸에게로 전해지다 그 아이들 귀에까지 들어가는 것이었다.


"○○! 너희 엄마 아빠 이혼했어?"


내 아이가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순간을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도움 하나 되지 않을 관심들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주소를 옮기고 두 집 사이를 드나드는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피하려 했던 나의 노력도 출퇴근 거리와 시간이라는 현실적 문제 앞에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나의 이혼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되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끼리 맞춰 가며 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 걸 지난 결혼 생활을 통해 충분히 실감한 사람으로써 누군가를 만날 생각도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사랑이 고픈 이혼 남녀라면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 계부의 성폭행, 치정에 의한 자녀 살해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된 짝을 찾아 나서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같았다.


프로그램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떠나 이혼 후 한부모 양육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이혼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흔해져  이상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때까지 '돌싱글즈'가 계속되길 바라며 나도 나의 이혼 상황을 조금 더 편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 본다.


'사는데 뭐 정답이 있나? 안 맞고 힘들면 이혼도 하고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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