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운전 중
대학 시절, 파리의 교실에서 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운전면허를 딴 친구를 둘러싸고 박수를 치던 사람들.
누군가는 어깨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축하해!”를 연발했다.
나는 그 광경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면허는 그리 큰 축하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기에 떨어지면 “바보” 소리를 듣기도 했고,
붙으면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박수가 뭘 의미하는지.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프랑스에서 면허를 바꾸려면
결혼 후 1년 안에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하게 1종 면허를 따기로 했다.
수동차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그게 조금이라도 수월하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일주일 만에 면허를 땄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
경시청 창구 앞에 섰을 때,
나는 꽤 확신에 차 있었다.
담당자는 서류를 보더니
잠깐 멈췄고,
고개를 저었다.
“결혼하고 1년 안에 바꿔야 해요.”
“아직 1년 안 됐는데요.”
“결혼하기 전에 따셨어야 해요.”
… 잠깐만요?
담당자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금 내 체류 자격이 배우자 비자라면,
그 자격을 얻기 이전부터
이미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결혼 후에 딴 면허는,
아무리 1년 안이라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남편은 화를 냈다.
“왜 지난번엔 그렇게 자세히 말 안 해줬냐”라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한국 왕복 비행기 값,
학원비,
시험장 오가며 쓴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경시청을 나오는 길,
우리는 프랑스에서 면허를 따는 데
얼마나 드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예전에 인턴 시절,
스치듯 들었던
협의이혼 변호사 비용보다.
“그럼…
이혼하고 면허 따고
다시 결혼하는 게 더 낫지 않아?”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영 가라앉을 것 같았다.
프랑스 면허 학원에서
처음 만난 문제는 이랬다.
“겨울철에 raclette(하끌레트)를
차 안에 갖고 다니는 게 좋은가?”
나는 raclette가
치즈를 녹여 먹는 요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겨울에 배고플까 봐?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이 나라 사람들,
차 안에서 치즈 파티라도 하나?’
잠깐 고민하다
Non을 눌렀다.
정답은 Yes였다.
raclette는 요리가 아니라
“긁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었다.
눈이 왔을 때
유리창을 긁어내는 도구.
그제야 이해했다.
언어를 안다는 것과,
그 언어로 산다는 건
정말 다른 일이라는 걸.
회사로 가는 길은
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도로다.
가끔 도로 위에
산짐승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산짐승이 있었던 자리다.
처음엔 놀랐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 또구나.”
하고 지나가게 됐다.
그게 조금 낯설었다.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
필기시험에도
비슷한 문제가 나왔다.
“운전 중 앞에 동물이 있고,
정면에서 차가 달려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켜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속도를 유지할 것인가.
정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냥 치고 간다.
멧돼지처럼 큰 동물만
아니길 바라면서.
이런 질문이
시험에 나온다는 게 놀라웠지만,
곧 이해가 됐다.
이곳에서 운전은
기술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리고 시험은
그 생존의 규칙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필기시험은
다섯 문제 이하로 틀려야 합격이다.
나는 정확히 다섯 개를 틀렸다.
아슬아슬하게.
결과가 나오던 날,
남편과 그의 매니저가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결과 나왔어?”
“응. 붙었어.”
잠깐 정적.
내가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다들 내가 떨어진 줄 알았다고 했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
갑자기 축하 파티 분위기.
“기쁘지 않아?”
“응… 기쁜 것 같아.”
한국에서는
필기는 원래 붙는 거니까.
몸이 아직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처음부터
도로로 나간다.
운전에 능숙한 사람도
최소 20시간,
초보자는 32시간 이상 연수를 받는다.
시간당 42유로.
대기자는 많고,
시험 날짜는 자꾸 밀린다.
한 번에 붙어도
1년이 걸릴 수 있다.
그동안 나는
rond-point,
원형 교차로를 수없이 돌았다.
처음엔 어지러웠고,
나중엔 그냥 돌았다.
생각보다 몸이 빨리 배웠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 도로의 규칙을 배웠다.
눈이 오면 raclette를 쓰는 법,
동물을 만나면 망설이지 않는 법,
원형 교차로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 법.
그리고
“아, 또구나.”
하고 지나가는 법.
면허를 딴 날,
나는 다시 대학 시절 그 장면을 떠올렸다.
박수를 치던 사람들.
그들이 축하한 건
면허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낯선 규칙에 적응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사람.
그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보내는 박수였을 것이다.
지금 내 지갑에는
두 개의 면허증이 있다.
하나는 한국어로,
하나는 프랑스어로 쓰여 있다.
둘 다 같은 나를 증명하지만,
그걸 얻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달랐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을 했고,
프랑스에서는
조금 자랑해도 되는 일을 했다.
어쩌면 이 두 면허증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기보다,
내가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는
당연함 속에 살았고,
프랑스에서 나는
낯섦 속에 산다.
그리고 그 낯섦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조금씩 변한다.
“아… 또구나.”
하고 지나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을 남기는 사람으로.
지금도 가끔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이렇게 생각한다.
“아… 또 목돈이네.”
그래도 괜찮다.
차는 고장 나고,
사람은 배우고,
삶은 계속되니까.
나는 여전히
두 언어의 도로 위를 달린다.
하나는 한국어로 된 도로 위에서,
하나는 프랑스어로 된 도로 위에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는 못했지만,
어디서든
어찌어찌 잘 운전하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