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도 돌아다닌 한달
#뻘소리대잔치
손님을 응대하는 내 기준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가게에 들어올 때 인사하거나 계산할 때 살짝 마-가 뜨는 시간에 말 거는 것 빼면 손님이 책을 살펴보던, 공간을 구경하던 나는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손님일 때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말을 걸어주세요 하는 분위기가 풍기는 손님을 마주하거나, 손님이 먼저 이런저런 질문을 할 때 가끔 나는 뻘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을 때면 더더구나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손님이 간 후 나는 외마디 비명으로 부끄러움을 상쇄시키려 노력한다. '악!' 이렇게 해도 마음속 상쇄가 안되면 그날 밤 이불은 사정없이 허공에 날린다.
#보성빵집
책가게 오픈하고 자주 왔던 지인이 보성군 벌교로 이주해 빵집을 열었다. 오픈날 지인들과 함께 당일치기 벌교여행을 떠났다. 그 분의 고급스런 빈티지 감성이 가득한 벌교 유일무이한 수제 빵집을 구경하고 빵을 맛보니 정말 맛있었다. 빵은 사랑입니다. 오픈하자마자 분비더니 매일 빵이 매진된다고 한다. 자영업자로써 부럽기도 하고 매일 빵도 먹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 그나저나 빵, 카페, 맛집에 줄서서 먹는 문화가 언젠가 동네 서점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흐음... 과연...
#전주국제영화제
5월 초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려 책가게 휴무일에 맞춰 짧은 전주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국제영화제가 전주에 열린다고 했을 때 굳이, 왜, 전주까지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나 싶었지만 이런 문화국제행사가 여러 지역에 열리는 게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으로 관점이 바뀌었다. 지역의 문화감수성을 채울 수 있으니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분명 득이 될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내세울 게 있다는 것은 중요하니까. 새삼 청소년 시절, 울산살 때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혼자 가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예술 영화 잘 봤네. 비록 두 편 중에 한 편은 꿀잠에 빠지긴 했지만.. ^-^;
전주엔 어릴 때부터 이모댁이 있어 가끔 왔다. 그 땐 시간이 멈춘 한적한 동네라는 느낌이었는데 근래 전주는 국내여행의 메카로 자리잡은 느낌이 물씬. 유명한 한옥마을 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골목골목 사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영화제 기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번화가가 아닌 이모 동네 집값마저 들썩이는 거 보면 뜨긴 떴다. 이모는 내심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집값이 올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
#두번의 독서모임
책 붉은선과 어떻게 죽을 것인가 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책 붉은선은 읽으면 읽을 수록 답답해지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그런 양가적인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 모임에서도 나처럼 답답한 분들이 계셨다. 술 한잔이 절로 생각나 홀짝홀짝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모임이었다. 그래, 알아가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니겠지, 알아가는 고통도 있는 걸테다.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마음에 속속 박히며 재밌게 읽었다. 목차를 인용하여 독후감을 썼다. 죽음이 막막해질 때 한번씩 읽어야겠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도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라는 말에 일순 마음이 무너지더라도, 누군가에 의존하며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잠시 잃어버리더라도, 의학적 치료만을 믿지 말고 타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는 것.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음을 현실에서 실행하기 위해선 내려놓기가 필요한 법.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두렵지만 꼭 나눠야하는 어려운 대화를 상상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다.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삶을 잘 끝낼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요즘것들의학교
서울에 일정이 있었다. 청년들 앞에서 청년의 이야기를 하는 기획이었고, 나는 취미생활편을 맡아 내 얘기를 했다. 왜 내가 이런 저런 걸 이렇게 저렇게 하게 됬는지, 그러니까 이렇더라 저렇더라, 여러분의 취미활동은 어떻습니까 하는 말하고 듣는 시간. 미래는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봅시다 라는 메시지를 투박하게 던진 것 같다. 여럿이 아닌 혼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한 경험. 윽- 준비한다고 했는데 그닥 후한 평가를 못 주겠다. 그래도 '이건 말하지 말자' 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 다행. 시간 안에 할 말을 한다는 건 어렵구나. 다음엔 후한 평가를 줄 수 있게 잘해보리라. 나를 포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연습을 틈틈히 해야겠다. 어디서든 말이다. 내가 나에게도.
#두번째 도난
5/17 가게 앞에 둔 해피트리 나무가 사라렸다. 엄마로부터 받은 가게 오픈 선물이었다. 5월 들어 급격히 시들시들하길래 밖에 놔둬 바람을 쐬게 할 요량이었다. 무거운 화분을 바깥에 내놓은지 이틀만에 나무 기둥이 쏙 뽑혀있었다. 깜짝 놀라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건너편 칼국수집 사장님이 이 골목에 이런 도난사건이 가끔 일어난다고 하셨다. 본인도 여러 번 당했다며. 하이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민원도 넣고 혹시나 버리는 거라 생각하고 가져갈 수 있으니 안내문도 붙였다. 작년 자전거 도난 사건 이후 두번째 도난 사건이다. 아니 도대체 왜 남의 물건을 가져갑니까... 훔쳐간 사람에게 저주를 걸었으나 통할지 모르겠네.
#춘향제 그리고 가족
작년 10월 흥부제가 열릴 때 지인이 말했다. 5월 춘향제 때는 이보다 더 사람이 많을 거라고. 과연 5월이 되니 남원 시내가 춘향제로 들썩이는 느낌. '이래도 안 올거니' 하는 느낌으로 온 거리가 춘향제 홍보물로 도배가 되었다. 4일 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꽉꽉 채워넣었는데 나는 공연프로그램이 기대됬다. 그 기대만큼 새로운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세계음악과 국악의 협연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리듬을 만든다는 것, 참 멋진 일이다. 마침 가족이 겸사겸사 남원에 와서 아빠와 동생이랑 함께 불꽃놀이도 보고, 이모와 엄마랑 공연도 보며 가족적인(?) 행사를 즐겼다. ^^; 춘향제 동안 가게도 쭉 열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알바도 하고 집정리도 하며 정신없이 보넸네. 후-하-
#반가운 손님들
이번달도 반가운 손님들이 책가게에 다녀갔다. 내가 남원에 있다는 걸 기억해서 독일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와주신 지인들이며, 오며가며 먹을 것을 챙겨주는 손님, 길냥이 특별식을 주시고 간 손님 등 내가 마음을 다잡게 이따금씩 만들어주어 참 고맙다. 나 역시 누군가 생각하며 무언가를 주는 그 기쁨을 잘 알아가야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꿀 같은 시간도 보내고, 마음 상한 시간도 보내고 그 와중에 길냥이들은 부지런히 밥을 먹으러 왔다. 어떤 길냥이는 살짝살짝 가게 안이 궁금한지 들어오려 하기도 하고.
내가 보낸 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살짝 아쉬운 그런 한달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