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락을 짓기까지
#2019. 5.19-2021.5.23 사이
책가게 일지를 적은 가장 최근이 2년 전이다. 공간을 옮기면서 적어야지 했던 다짐만 2년 동안 했구나. 생활의 루틴이 바뀌면서 이 일(!)의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렸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감의 순간이 왔다. 잘 열 수 없었던 공간마저 정리를 하였기 때문이다. 자, 밀린 일지를 펴보자.
#책가게를 옮기다
2019년 봄이 지나, 책가게 공간 임대 기간이 끝나가면서 고민을 하다가 서울에서 다시 직장인이 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도공디공(aka 도시+공간+디자인+공부) 모임도 하고, 이따금 시간이 되면 남원에 올 예정이라 바로 공간을 싹 다 - 정리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큰 가구, 가전은 정리를 하고 책과 책장들은 어디론가 옮기고 싶었는데 마침 지인의 작업실로 갈 수가 있어 이사를 하였다. 난생처음 산 큰 테이블과 의자 등 가구를 비롯해 거의 한 달을 고민하면서 산 냉난방기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중고로 다시 팔면서 첫 공간으로 이사 온 날의 모습이 되었다. 아련하고 뿌듯하고 조금은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2019년 4월 남원시 동헌길에서 비석길로 책가게 남은 물건을 옮겼다.
#길냥이
공간을 옮길 때 마음이 가장 걸린 부분은 책가게 창가 한편에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들이었다. 내가 주고 싶어서 준 밥이었지만 나의 사정으로 못 주게 된 것 같아 미안했다. 특히나 마지막 날엔 다리를 절둑거리며 밥을 먹으러 오는 많이 아파 보이는 고양이가 한참을 있다 갔는데 나도 그 고양이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과 고양이가 기억에 진하게 남았다.
#공간은 사회적 자본이다
공간은 옮기긴 해도, 사실상 책가게 영업은 하지 않는 거라 이 소식을 들은 내 주변 지인을 비롯해 친구들, 자주 오던 손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어 만든 공간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도 타인과의 영향력은 주고받는다는 것, 어떤 공간이더라도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비석길 살이
옮긴 공간은 비석길 모퉁이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에 미닫이 알루미늄 샷시문 소리가 요란한 ㄴ자 구조의 20평이 조금 안 되는 공간이다. 슈퍼로도, 횟집으로도 쓰였다가 한동안 빈 공간이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지인이 그림 그릴 작업실이 필요해 내가 들어가기 1여 년 전부터 쓰고 있었다. 전시도 가능하게 그의 색깔이 맞춰 정감 있게 꾸며놓은 공간에 책가게 짐들을 풀었다. 1년 연세를 나눠 내기로 하고, 지도 앱에 바뀐 책가게 주소를 지정하며 골목 모퉁이, 슬레이트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서 나의 이중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무튼, 다시 서울, 그리고 새로운 지역
속전속결로 남원에서 짐 정리를 하고 서울 출근길에 올랐다. 책가게 다음 일로 무엇을 할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결정하고 서류 지원하고 면접 보는 일정이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집 구할 시간이 없어 친구 집에 잠시 얹혀살기로 했다. 친구의 집은 서울 구로구, 내가 다닐 직장은 은평구. 말로만 듣던 편도 1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두 번째 서울살이, 주 5일 직장 네 번째. 어떤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일과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문단에서 좀 더 자세히 풀기로 하자)
친구네 집 생활은 무려 1년 동안 지속되었다. 더 이상 살았다가는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도 나의 코골이를 참아주기 힘든 것 같아(^^;) 온갖 집 구하는 앱을 보며 직장 근처로 집을 알아보았다. 천도 없으면서 억 소리 나는 집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위성 지도를 보며 동네를 가상으로 살펴보았다. 은평구, 마포구, 서대문구 등 서울만 보다가 조금 확대를 해보니 경기도 고양시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은평구와 생활권이 겹쳐 대중교통이 많았다. 서울에서 집을 무리해서 살 생각도 없으니 같은 임대 가격이면 고양시에서 구하는 것이 그나마 덜 포기할 수 있는 집에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부동산 가서 집을 알아보는 것이 꺼려지고 싫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순탄하게 부동산을 들어가서 알아보고 출퇴근 거리가 적당한, 나름 혼자 살기에는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의 이주의 역사와 많은 공간을 둘러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래도 2년 뒤 또 집을 알아볼 생각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긴 하지만..-_-...) 내가 사는 집 주변으로 시장, 체육관, 도서관 등 내가 원하는 이용 시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어 좋다. 관공서가 가까이 있어 안전한 느낌도 들었다. 구도심 골목을 다니는 재미를 남원에 이어서 느낄 수 있어서 더 좋고. 울산에서 태어나 살다가 창원, 서울, 남원, 다시 서울 그리고 고양시까지. 나의 이주의 역사 발자국에 한 걸음 더 추가가 되었네.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에 집을 구한 후 고양시 생활도 1년이 지났다. 100만이 넘는 인구 규모도 그렇고 울산시 생활과 비슷한 느낌이다. 고르게 소비지향적으로 잘 사는 느낌이랄까... 다른 점도 물론 있는데 서울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는구나를 출퇴근 길이면 느낄 수 있고, 가끔 광역버스를 타게 되면 더더욱 체감하는 풍경이다. 막차가 새벽 2시까지 있다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경기도민의 약속 시간 정하기, 경기도민의 설움 같은 짤을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았다. 과연 다음은 어디서 살게 될까? 그 어디든 열 번에 걸친 이주 경험으로 생긴 이상한 자신감(!)으로 잘 살아낼 수 있겠지.
#네 번째 직장
4대 보험이 되는 네 번째 직장 생활은 꽤 안정적이다. 돈이나 정년 보장의 안정이 아니라 기분의 안정감이랄까... 책가게 공간을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크게 했던 고민은 '무슨 일을 하여 먹고살까'이었다. 책가게 운영으로 더 고군분투해볼 수도 있었으나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혹은 더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나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암튼 다시, 조직에 들어가려고 준비를 했다. 오라는 곳은 없었지만 갈 데는 많았다. 전혀 새로운 일을 해볼까 시도도 해보고, 여러 조건을 저울질하다가 했던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전 직장의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었다. 그때 저울질이 맞았는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하는 일은 만 개의 단어로도 설명할 수 있는 일인데 줄여서 설명하면 서울시 위탁기관에서 청년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정도로 요약하겠다. 이전 조직 생활에서의 조급함, 이상적인 조직문화의 갈급함은 자영업을 해보고 나니 사라졌다. 그렇다고 기대를 전혀 안 한다거나 있는 듯 없는 듯 월급 루팡의 지혜를 부린다는 것은 아니고. 조직의 한계를 인정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시거리를 넓히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조급함이 많이 없어지니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일하려고 노력하니 실제로 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감정적으로 휘둘릴 때 마음의 소용돌이가 오는 때가 있긴 하지만...) 기대를 내려놓으니 집중력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자영업으로 망해봐서 월급의 위력을 체감해서 그런가.. 경력이 생겨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1년+1년을 채우고, 팀과 조직을 생각하며 일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성장이 조직에도 도움이 되고, 조직의 일에서 나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 팀 간 협업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예상대로 잘 안된다. 그래도 뭐 괜찮다 싶기도 하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니 괜찮다 싶은 생각. 잘 마무리 지었다는 느낌이 들면 이직할 생각이다. 창업할 생각도 있고. 브런치에 주마다 출퇴근 일지를 써놓은 기록을 보며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직장 생활을 하자라는 목표를 잊지 않고 있다.
#코로나
2019년 4월에 서울에서 재-취업을 하고 남원을 왔다 갔다 하는 이중생활을 하다 2020년 2월 엄청난 재난이 터졌다. 바로 코로나. 자유롭게 어딘가 갈 수 없는 날이 올 줄이야.. 무언가를 예측한다는 것이 이렇게 의미 없을 수도 있구나를 알았다. 더 나은 변화를 위한 사회를 갈망하지만 결국 이런 변화를 만드는 인류라니... 아니다, 어쩌면 세계사 페이지에 이 변화도 한 줄로 설명되는 때가 또 오겠지.
직장에서도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의 장을 준비하고, 매일 마스크 관련 뉴스를 보고, 확진자 경로 이슈를 보고, 경제 악화의 뉴스를 보고 자영업의 한숨을 보면서 내가 버는 돈의 무게를 느꼈다. 내가 만약 책가게를 계속 운영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모두의 안녕을 기도하게 되는 재난의 일상을 겪으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자주 보게 된다.
#도공디공 3년 차
공간 운영과 운동 모임은 물리적으로 몸이 하나라 지속하긴 어려워도 공부 모임은 일정을 정해서 오면 되니 계속 하자 싶었다. 매월 주제를 정해서 책과 보고서를 읽으며 수다를 떠는(!) 에너지는 직장 생활을 지속시켜주는 힘(?!)이 있다. 직장에서 겪는 불순물의 감정을 오며 가며 풍경 속에 버리고 오면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일하는 데 도움이 되고. 도시 계획, 모두를 위한 길, 페미니즘, 디자인 등이다 보니 평일 나의 일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2020년에는 시민 모임 지원금을 받아서 아카이빙 사이트도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 보았다. 도시를 공부하니, 어느 동네를 가도 재밌는 것들이 보인다. 저 집은 왜 저렇게 지었을까. 저 도로를 이렇게 바꾸면 모든 사람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등 아파트 단지와 도로와의 관계, 주변 경관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견문을 쌓(는 느낌이 들)고, 출퇴근 길에서도 탐험가가 될 수 있고 말이다. 공부의 힘이자, 모임의 힘이겠지.
#책가게 인스타그램의 용도변경
오픈, 클로즈 안내와 책, 이벤트 소개용으로 활용한 인스타그램이 공간 운영을 하지 않게 되면서 책과 그림 리뷰, 도공디공 모임 활동을 알리는 공간으로 용도변경(!)을 했다. 독서모임도 꾸준히 하고, 책가게도 운영해보니 책 읽는 지구력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으니 브런치,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글-근육도 조금씩 키워야겠다. 프로필에 공간은 운영하지 않는다 써놔도 가끔 공간을 여는지, 책을 파는지 물어보는 DM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공간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비석길 공간 정리
공간을 옮기고, 공부 모임으로 남원을 오며 가는 생활을 했지만 2년이 지나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주 5일 직장생활은 꽤 에너지가 들어갔고, 여러 지역을 방문하게 되는 일도 겹치고, 코로나 마저 남원 가는 걸 막기까지 했다.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생각해서 부득이 셰어 한 공간을 정리하게 되었다. 도공디공 공부모임으로 가끔 오긴 하겠지만 빈도는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
작년에 직장에서 지역 교류 사업으로 출장을 다니다 춘천을 몇 번 오가게 되었다. 춘천의 구도심도 여기저기 돌아보고, 넓은 호수를 주변으로 한 경관을 다녀보기도 하고, 책방을 비롯해 특색 있는 공간도 구경하고, 자전거, 청년, 시민 활동들을 살짝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중소도시의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춘천에 공간을 얻거나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을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올해도 또 가볼 생각이다. 남원과 춘천이라... 그리고 서울 생활까지. 할 수 있을까? (체력 관리 잘해야지^^;)
#알아가는 책가게를 열고 닫기까지
공간을 오픈하고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북, 화분, 난방기, 가구들, 그리고 돈까지, 물적 도움과 시간 내어 찾아와서 응원해주며 함께 남원 이곳저곳을 다닌 가족, 지인, 여러 직장 동료, 친구들의 정신적 도움까지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또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지도 검색하여 일부러 발걸음 해준 책가게를 지나간 손님들께도 감사하다. 남원시의 도움도 받았고.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사회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아이뿐만은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결코 혼자서 진행할 수가 없다. 시작하는 마음, 끝내는 마음은 내가 결정하더라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는 나의 사회가 큰 버팀목이다. 이것을 '알아가는' 것임을 마음에 깊게 새긴다.
#그래서
책 팔아서는 정말 아니구나를 경험까지 해서 알게 되었지만 책을 파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좋았다. 다음에 하면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고. 주 5일 직장생활, 3주에 한번 도공디공 공부모임 활동에서 얻는 것을 셈하면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닐까. 경험이 쌓이면서 좋은 것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인데 또한 안 좋은 것은 알기 때문에 하기 싫어지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경험 숭배자에서 경험 절충자로 노선을 갈아타는 시점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스트레스가 쌓여 약간 네거티브 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가게는 일단 망한 것으로 일단락 짓지만 다음이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더 전문적으로(!) 절실하게 잘해볼 것이다. 무엇을 해볼지는 모르겠지만 내 길을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왔듯이 무엇인가 분명할 테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가보면 미래의 내가 잘할테니 조급해하지만 말자. 그래. 그러자.
알아가는 책가게를 열고 나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