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고단함...나만 느끼는 건가요..?
6교시는 외부강사님들이 수업하시는 스포츠클럽시간이었다.
교실에서 모든 학생이 체육실 및 강당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교무실에 앉아서 자유학기(미친 자유학기!! 할많하않) 강사채용 관련 문서를 작성중이었다. 갑자기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1학년 2반 교실에 학생 여섯 명이 있어서 강당으로 보냈다고 하셨다.
2반은 우리 반은 아니지만 나는 학년 부장이다.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오길 확인 후 여섯 명의 학번과 이름을 메모하며 왜 스포츠클럽 수업에 안들어가고 교실에 있었는지 이유를 물었고, 반성의 기미 1도 없이 말 잘 하는 우리 여중생들은 나름의 이유를 댄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내면 안 된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정서적 학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만 한 후 담임샘께 학생들 명단을 넘기고
체육샘께 메시지를 보내 그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확인결과 여섯 명 모두 미참여했다고 해서 담임샘께 미인정결과 처리하시라고 했다.
여섯 명을 불러서 방과후에 지도(이것도 잘못하면 민원 속출-나는 민원 따위 가볍게 무시하기 어려운 교사나부랭이다ㅠ)하려 했으나 부장회의 끝나고 올라와보니 학생들은 이미 하교 후였다.
내일 지도하리라 마음먹고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자아성찰 및 다짐문 양식을 정성스레 만든다.
설거지를 하며 '내일은 꼭 아이들을 불러서 감정 빼고 잘못된 행동만 지도하고 교육하리라'다짐하다가 문득 이광수의 <무정>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르면서 슬퍼졌다.
"옳습니다. 교육으로, 실행으로 저들을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누가 하나요?"
하고 형식은 입을 꼭 다문다. 세 처녀는 몸에 소름이 끼친다. 형식은 한번 더 힘있게,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고 세 처녀를 골고루 본다. 세 처녀는 아직도 경험하여 보지 못한 듯한 말할 수 없는 정신의 감동을 깨달았다. 그러고 일시에 소름이 쪽 끼쳤다. 형식은 한번 더,
"그것을 누가 하나요?"
하였다.
"우리가 하지요!"
하는 대답이 기약하지 아니하고 세 처녀의 입에서 떨어진다. 네 사람의 눈앞에는 불길이 번쩍하는 듯하였다. 마치 큰 지진이 있어서 온 땅이 떨리는 듯하였다. 형식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니,
"옳습니다. 우리가 해야지요! 우리가 공부하러 가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차를 타고 가는 돈이며 가서 공부할 학비를 누가 주나요? 조선이 주는 것입니다. 왜? 가서 힘을 얻어 오라고, 지식을 얻어 오라고, 문명을 얻어 오라고…… 그리해서 새로운 문명 위에 튼튼한 생활의 기초를 세워 달라고…… 이러한 뜻이 아닙니까?"
무정한 세상을 우리의 힘으로 계몽시키면서 유정한 세상을 만들자~~고 외쳤던 소설의 작가는 변절한 친일파로 유명한 이광수다.
그가 꿈꿨던 교육을 통한 계몽(그는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다)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스스로 자각하여 깨닫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지식의 주입으로 계몽을 꿈꿨던 이광수의 '교육'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의 '교육'과 과연 다른 점이 있긴 한걸까?
'진짜 교육'은 할 수도 없는 현실이 이젠 지긋지긋할 뿐이라고 표현하면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과연 나는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인가...아니면 밥벌이의 고단함에 지친 교육서비스직 종사자인가...
나의 정체성 혼란은 도대체 언제 끝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