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서로 인지적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오해와 이해

by 이순신서점

1. 다른거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2. 일본 근무 첫날, 통장을 열러 은행에 갔습니다. 점심때 잠시 짬을 내서 갔다오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왠걸? 3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 겨우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화가 나더라구요. 외국인이라고 차별하나? 혐한이 퍼졌다던데 창구 직원이 우익인가?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3. 친한 일본인을 만났을때 따지듯 물었습니다. 너무한거 아니냐고? 일본에 실망했다고, 그러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 하더군요. '김 상, 평생 한번 만드는 통장인데,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안전하게 만드는게 좋지 않아요?' 엥? 평생 한번 통장을 만든다고요?


4. 알고보니 일본은 주거래은행을 한번 정하면 평생 그곳만 이용하더군요. 보통예금 통장은 하나만 만들어 이 또한 평생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곳 저곳 여러 은행을 사용하고, 계좌를 만들었다가 잃어버렸다면 또 만들어주는 우리와는 다른 환경인거죠. 통장 하나 만드는게 일생에 한번 있는 중대 이벤트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3시간이나? 라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만, 듣고 보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5. 답답하지만, 철저한 통장 관리 때문인지, 일본에는 남의 명의를 빌려다 부정한 곳에 사용하는 대포통장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금융 관련 범죄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편이구요. 엄청나게 기다린 대신 좀 더 안전해진겁니다.


6. 조금 불안하더라도 빨리 편리하게 갈건지, 답답하더라도, 안전하게 갈건지는 그 나라 국민들의 선호가 반영된 것이겠지요. 어느게 틀렸다 맞았다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 빨리 빨리, 시원 시원한 한국이 좋긴 합니다. 그게 편합니다.


7. 독주택 짓는데 관심이 있어서 일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M사에 집 짓는 컨설팅을 받으러 갔습니다. 고객이 짓고 싶은 집을 컴퓨터로 설계 하면, 공장에서 목재 패널을 만들어내고, 이걸 가져다 현장에서 일주일 걸려 조립해주는 회삽니다.


8. 집은 참 깔끔, 편리하게 잘 만들어 주는데, 견적을 받아보니, 너무 비쌉니다. 한국에 비해 평당 건축비용이 2.5배가 넘습니다. 좀 놀란 표정을 짓자, 담당자가 자기들은 50년간 하자 보증을 한다고 자신있게 말 하더군. 절대 비싼게 아니란 거죠. 엥? 50년이라구요? 또 한번 놀랐습니다.


9. 일본 사람들은 직장에 들어가 30대 초중반에 집을 짓느다고 합니다. 자기가 애 낳고 평생 살다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집을 짓는 거지요. 어차피 잃어버린 20년 이후로 집값은 잘 오르지도 않으니, 잘 지어서 평생 살 걸 생각하고 짓는거지요. 50년 동안 유지보수를 해줘야 하니 업체 입장에서도 지을때 제대로 고장 안나게 지어주는게 득이 되는거죠.


10. 5년쯤 살다가 고장나면 좀 고쳐쓰고, 집 값이 좀 오르면, 10년 뒤 이사가거나, 트렌드에 맞게 한번 더 짓지? 라는 생각이었던 저와는 뇌 구조가 달랐던 겁니다. 그들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던 겁니다. 또 한번 배웠습니다. 다른거지 틀린건 아니군요. 그래도 저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한국 스타일이 더 좋습니다.


11. 집 주변에 오래된 가전 양판점들이 있더군요. 파나소닉 같은 회사명을 단 작은 가게들입니다. 전기포트, 에어컨, 선풍기 등 소소한 가전들을 팝니다. 예전에 시골에 있던 전파사 느낌의 가게들입니다.


12. 장사가 될까? 걱정이 될 정도로 허름한데요.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됩니다. 손님들은 이 동네 주민들이지요. 대형 양판점에 가거나, 인터넷에서 사면 싼데, 왜 비싼돈 주고 허름한 동네 가게에 가나?


13.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일본인 친구가 그러던군요. 자기도 동네에서 가전제품을 산답니다. 좀 비싸긴 하지만, 단골이기도 하고, 그동안 그 집에서 가전제품을 사와서, 고장이 나거나 하면 아저씨가 와서 수리를 해준답니다. 간단한건 무료로, 아니면 약간의 수고료 정도를 받는다네요.


14. 그렇구나. 비싼게 비싼게 아니었구나. 여기는 인건비가 참 비쌉니다. 저도 식기세척기 한대를 인터넷에서 샀는데, 설치비가 식세기 한대 값이 나오더군요. 혼자 해보려고 끙끙대다가, 결국 안되서, 할수없이 사람을 불러 썼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좀 더 주고라도 동네 전파상에서 사는게 이해가 됩니다. 길게 보면 그게 더 이득인거죠.


15. 대형 유통망 보다 소형 유통망이 발달하고, 동네에 아기자기한 작고 오래된 가게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네요.


16. 일견 답답해 보이거나, 이상해 보여도 나름의 합리성이라는게 있는거네요.


17.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네만은 인간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뇌는 기존의 경험에 근거해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1과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깊은 생각을 하는 시스템2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스템1은 에너지를 덜 소모하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시스템1을 먼저 가동한다고 하네요.


18.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생김새도 비슷합니다. 일본의 거리와 건물, 생활 방식도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지요.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나라와 비교해보면 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가 있을까요?


19. 실제로 1980년대에 전세계 50개국을 대상으로 한 사회문화적 특성에 관한 Hofstede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많은 측면에서 동질성이 높은 나라입니다.


* Hofsted는 다양한 나라의 국민성을 측정하여 지수화시키기 위해서 미국 IBM의 40개국 11만명의 종업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Hofsted 지수를 개발

20.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우리와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시스템1을 먼저 돌리는 거지요. 우리 뇌는 일본인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보다 더 인지적 게으름을 부리는게 아닐까요? 로 인해 더 많은 오해가 발생하고, 실망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21. 알듯 말듯한 나라, 일본, 이곳에 살면서, 좌충우돌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종종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