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가 도쿄에 오셔서 일주일 정도 머무셨습니다. 가실 때 한마디 하시더군요. 일본은 하지 말라는 게 많다.
2.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일본에서 살면, 한국 보다 하지 말라는 게 많다고 느끼실 겁니다. 처음에는 잘 못 느끼는데,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하고, 일본인들과 가까워질수록 그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3.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외국에 살다 온 일본인들은 갑갑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외국인 학교를 보내거나 외국인 주거지역으로 이사를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4. 좀 더 지내다 보면, 이런 점도 느껴집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구나. 남이 뭘 하든 그리 신경 쓰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5. 일본에서는 집 밖에 담배를 피울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식당을 찾거나, 흡연구역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집에서 담배를 많이 피웁니다. 담배 연기가 윗집에 당연히 스며들겠지요. 그러나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집에서 피운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이 부분은 한국과 다른 것 같습니다.
6.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신호등도 하지 말라는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유턴이 안된다고 적혀 있지 않는 한 중앙선 넘어 반대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도 대부분 허용됩니다. 대신에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소위 네거티브 시스템인 거지요.
7. 아침 출근 때마다 일본인 경비원과 인사를 합니다. 젊은 청년으로 아침마다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깍듯이 인사합니다. 군인이나 경찰 출신인가? 성실하고, 바른 이미지의 청년이었습니다. 이 친구 퇴근할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백입니다. 하얀 중절모에 아래위 모두 하얀 정장, 백구두까지 갖춰 입었습니다. 출근 때와는 이미지가 완전히 다릅니다. 직장은 직장, 사생활은 사생활로 구분이 명확합니다.
8. 일본 회사에 가보면 차 마시고, 잡담하고 있는 직원들이 거의 없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칼같이 자리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을 엄수한다. 일본 직장인들은 서로 휴대폰 번호를 잘 모릅니다. 퇴근하면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근무시간 외에는 내 시간이라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야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퇴근하면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끝날 때까지 붙잡혀 있는 겁니다.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9. 일본에서 택시를 탈 때는 회사 택시를 타십시오. 제국택시나 미키택시 같은 회사 소유 택시 말입니다. 저는 개인택시는 되도록 피하고 있습니다. 개인택시를 탔다가 시비를 걸거나,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 있어서 그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일 테지만, 일본인들도 회사나 어떤 조직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느슨해지는 것 같습니다.
10. 하지 말라는 것이 많다 보니 이것 말고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거지요. 코스프레나 오타쿠 문화는 그래서 발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11. 유흥산업. 일본말로는 풍속산업이라고 합니다만, 이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지 말라는 규정된 것 외에는 다 허용입니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보면서 기괴함을 느꼈다면 이 때문일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닌 한, 인간 상상의 끝까지 실현하기 때문이지요. 소녀의 허벅지에 누워 귀를 파 주는 서비스 같은 것들이 나오는 이유지요.
12.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수위를 넘나드는 장면이 많습니다. 제약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합니다. 몰래카메라도 호랑이가 사람을 위협하는 등 위험한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기 때문에 허용됩니다.
13. 일본에 살면서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아마 한국인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못하겠다는 마음이 작동하곤 합니다. 한국은 좀 느슨한 대신에 차마 그건 못하겠다는 공감대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타이트하게 사회가 돌아가지만 그래서인지 그 외에 부분에서는 자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4. 일본의 시스템은 가끔 위태로워 보입니다. 법과 제도, 관습, 관계로 사회 시스템은 움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