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아버지 1주기 기일도 한달 남짓 남았다. 작년 이맘때와 같이 유구 강가에는 수국이 한아름 폈고, 빗줄기는 차창을 때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이렇게 비가 억수로 내렸는데 시간은 정해진대로 흐르고,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간다. 나는 한 살 더 먹어, 더위를 더 타고, 식은땀을 흘리는 것 외에는 달라진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나가고, 떨어지는 일들을 쳐내고, 승진과 떡고물 관심을 아직 버리지 못 했다. 먹고 사는 것과는 무관한 책을 가끔 사서 읽고, 마음이 심란하면 수영장에 가긴 한다. 그나마 책과 수영으로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내가 사둔 영양제를 한줌 챙겨먹는다. 인간은 동물이라 약 먹으면 바로 반응이 온다. 하긴 책과 수영, 음악, 등산, 커피도 마음 보다는 몸에 특효약인건 매한가지다. 몸이 내린 주문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르신들은 이걸 다 아셨던 것 같다. 시골에 살 때는, 철이 되면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챙겨먹었다. 꽃이 피고, 단풍이 지면 산과 들에 안겼다. 낚시대와 그물을 들고 강과 바다로 나아가 살이 오른 물고기를 잡았다. 자연과 더불어,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삶.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타박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역시 도시 사람은 어쩔수 없다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이게 좋은 걸.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이런 삶의 태도가 진정한 상속이다. 돈과는 비교할수 없지. 장마철에는 장어가 제철이지? 뜨끈한 탕 한그릇 먹고, 수영 한판 하고, 낮잠 한숨 자고 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대충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