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 #1. 순댓국 싫어하게 된 사연
원래는 순댓국을 좋아했다.
그런 내가 순댓국을 싫어하게 됐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부장님은 싱글이셨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 '노총각'이셨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늦장가를 드셨다는 뜻.)
부장님은 집에 가면 혼자 저녁을 드시기 싫으셨는지,
일주일에 4.5일은 저녁을 드시고 가셨다.
18:00.
사무실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누군가는 용기 있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마디를 해야 하는 타이밍.
이때 갑자기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부장님의 한마디.
"저녁 먹고 갈 사람?"
3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그 정적은 4초를 넘겨서는 안 된다.
항상 그 정적은 내가 깼다.
"아, 안 그래도 저녁을 먹고 가려던 참입니다. (^^)"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던 후배는 갑자기 어딘가에 급히 전화를 한다.
아마 친구들한테 먼저 저녁 먹고 있으라는 것이겠지.
18:30.
부장님이 일어선다.
부장님을 따라나섰다. 후배도 따라나섰다.
회사를 나서며 부장님이 항상 하시던 말.
"오늘 뭐 먹냐?"
"부장님. 오늘 비도 오는데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부장님. 오늘 날도 더운데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부장님. 오늘 날도 추운데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부장님. 오늘 O도 OO데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어떠십니까?"
부장님의 반응도 한결같이 똑같았다.
"그럴까? (^^)"
부장님은 순댓국을 참 좋아하셨다.
부장님은 일 년 365일 순댓국만 드시고도 살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원래 순댓국을 참 좋아했다.
그런 내가 그렇게 회사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평상시에는 순댓국의 '순'자만 들어도 속이 거북했다.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으면 물린다는 말이 뭔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회사를 옮겼다.
새로 옮긴 회사에는 순댓국을 좋아하는 상사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우연히 순댓국 먹는 날에는,
순댓국을 참 좋아하셨던 부장님이 생각이 난다.
"부장님. 잘 지내시죠? 순댓국에 소주 한 잔 하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