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 #2. 나는 왜 밥을 빨리 먹게 되었는가?
나는 천천히 밥을 먹는 것을 즐긴다.
느긋하게 꼭꼭 씹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신입사원 시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점심시간.
11:40.
각 층별 식사 시간에 맞춰 구내식당으로 이동한다.
(고등학교 학년별 식사시간이 부활한 듯...)
당시 팀의 막내였던 나는 흘끗흘끗 부장님 자리를 보고 있다가 부장님께서
"자~ 식사하러 갈까?"라고 말씀하시면,
총알 같은 속도로 엘리베이터로 뛰어 나갔다.
구내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잡는 것이 주 업무.
부장님께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시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나의 역할.
간혹 대리님까지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나는 못 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엘리베이터보다 빠르게 계단으로 6개 층을 뛰어올라 구내식당으로 갔다.
11:50.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고, 각자의 식판에 밥을 푼다.
부장님이 제일 앞에서 식판에 밥을 담으시고,
차장님이 그다음에,
과장님들이 그다음에,
대리님들이 그다음에,
선배님들이 그다음에.
그리고 나면 막내 나의 차례.
아뿔싸.
혹시라도 내 앞에서 반찬통이 교체되는 경우에는 대략 난감.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으로 국을 식판에 올리는 순간에는
이미 부장님께서는 식사를 절반은 하신 상태이기 때문.
우스개 소리로
우리 회사의 임원 자격은 식사를 빨리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의사결정은 느린데, 식사속도만 빠른 것 같았다.
가끔 어떤 임원분들은 3분 만에 밥을 먹기도 하셨다.
내가 겨우 자리에 앉으면 이미 부장님은 절반 이상,
과장님들은 1/4 이상을 드신 상태.
허겁지겁 입에 밥을 욱여넣어 보지만,
국에 밥을 말아드시는 부장님을 따라가기에는 이미 글렀다.
밥을 삼키는지 씹는지 모르게 절반 정도를 먹다 보면,
어느새 부장님 이하 모든 분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국그릇에 타의로 남긴(?) 밥과 반찬을 모아 담으며,
"잘 먹었습니다! ^^"를 외친다.
그냥 먼저들 가셨으면 좋으련만,
이때만큼은 막내가 식사를 잘 챙겨 먹는지
모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 주신다.
어느덧 대리가 되었고,
또 다른 후배들도 들어왔다.
어느새 나도 밥 빨리 먹는 선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혼밥'을 즐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긴다.
뭐..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된 건가?
아무튼 덕분에 이제는 시간이 부족할 때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밥을 먹고
사무실에 복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